[씨네21 리뷰]
댄스영화의 숙명을 받아들이다 <피나>
2012-08-29
글 : 장영엽 (편집장)

“어때, 영화를 만들 수 있겠어?”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 1980년대 중반 베니스의 한 극장에서 인연을 맺은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와 빔 벤더스 감독은 이 문답을 무려 25년간이나 주고받았다고 한다. 언젠가 피나 바우쉬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빔 벤더스가 청했고 바우쉬가 이를 수락했지만, 실황 무대의 감동과 댄서들의 율동감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끌어오는 방법을 벤더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9년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보여준 3D의 기술적 성취에서 드디어 빔 벤더스가 해답을 찾았을 무렵, 피나 바우쉬는 세상을 떠났다. 바우쉬에게 바치는 영화이지만, 유일하게 실존하지 않는 등장인물 피나 바우쉬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다큐멘터리 <피나>는 이렇게 탄생했다.

<피나>의 일차적인 즐거움은 3D카메라로 담아낸 무용수들의 생동감 넘치는 춤을 지켜보는 데 있다. 무대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 3D 카메라는 피나의 대표작 <봄의 제전>과 <보름달>의 원초적인 에너지, <카페 뮐러>의 애수, <콘탁트호프>의 농밀함을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공연의 일부를 조명한 뒤 곧바로 피나 바우쉬가 이끌던 부퍼탈 무용단 댄서들과의 인터뷰로 이어지는 편집 방식 때문에 공연 실황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러한 편집 방식이 춤의 아우라를 훼손하는 건 아니니 안심하자. 빔 벤더스는 한발 더 나아가 작품의 무대를 야외로 옮기는 실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생전 바우쉬가 사랑했다던 부퍼탈이라는 도시와 자연 속에서, 그녀의 유산을 이어받아 춤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떠오르는 감정은 단 하나, ‘경이로움’이다. 육체의 움직임과 그 무한한 가능성을 카메라라는 질료를 통해 탐구하는 것이 댄스영화의 숙명이라면, <피나>는 그 숙명을 성공적으로 받아들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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