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건어물녀의 신혼여행기 <호타루의 빛>
2012-09-05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1953년 스페인 계단에서 오드리 헵번은 젤라토를 먹었다. <호타루의 빛>의 아야세 하루카는 아이스크림은 남편에게 맡기고, 대신 계단을 데구루루 구른다. 히우라 사토루의 원작 만화는 2007년과 2010년에 각각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이번 영화에선 드라마를 만든 요시노 히로시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며 동일한 배우와 스탭들을 다시 모았다. 때문에 영화는 드라마의 연장선상에 있다. 호타루(아야세 하루카)와 부쵸(후지키 나오히토)는 2부의 마지막에서처럼 결혼한 상태다. 그럼에도 호타루는 여전히 ‘건어물녀’이고. 즉, 영화는 일종의 캐릭터 코미디인 양 시작된다. 이혼의 아픔을 가진 상사가 건어물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이미 드라마에서 완성됐다. 영화는 이를 반복하는 대신 장소를 옮겨 이전의 캐릭터를 다시금 활용한다. 희귀생명체 건어물녀의 신혼여행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100%의 남자와 2cm 앞의 맥주조차 귀찮아하는 엉뚱녀가 로마에 나타났다. 덕분에 볼거리는 풍성해졌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호타루는 만화책과 과자, 맥주의 ‘건어물녀 3종 세트’를 안고 있다. 예전에 그녀가 연하남에 흔들렸다면 이번엔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의 로마의 휴일’에 매달려 고군분투하는 점도 다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시기하는 이탈리아의 또 다른 건어물녀와 맞닥뜨리는데, 호타루는 그녀와 대적하는 동시에 자신의 게으름과도 싸워야 한다. 감독은 벌어진 일을 숨기거나 늦게 드러내는 식으로 이야기의 서스펜스를 취하려 애쓴다. 하지만 이 화법이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아이와도 같은 호타루의 매력은 반짝인다. 인생의 빛나는 순간이 삶의 의미가 될 거란 영화의 주제와도 이는 잘 맞다. 새롭게 등장하는 마쓰유키 야스코, 데고시 유야의 캐릭터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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