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시대에 인류 최초의 여자가 출산의 고통 중에 옆에서 심드렁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 남자에게 ‘당신은 곧 아버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돌도끼를 숫돌에 갈다 말고 귀찮은 듯 ‘왜 하필이면 내가?’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할 뿐 그 말을 믿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쓴 <남자>의 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부성(父性)은 어떻게 발견된 것일까. <남자>의 추론을 따른다면, 여성들은 수천년 동안 섹스와 출산의 직접적인 관련성부터 무지몽매한 남성들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부성은 발견됐다기보다 부과됐다고 보는 편이 맞다는 주장이다. <Mr. 스타벅>의 데이비드 우즈냑(패트릭 휴어드)이 처한 난관은 어쩌면 선조들의 책임 회피에 대한 가중처벌일지도 모른다.
데이비드는 8만달러의 빚을 갚지 못해 아침부터 사채업자들의 고문에 시달린다. 아버지와 형이 운영하는 정육점에서도 그는 꼴통 취급을 받는다. 제시간에 출근한 적이 없는 데다 간단한 배달 일조차 하지 못하는 사고뭉치를 가족들이 반길 리 없다. 임신한 여자친구 발레리(줄리 리브리턴)로부터 이별 통보까지 받아든 이튿날, 데이비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듣는다. 자신에게 533명의 자식이 있으며, 이중 142명의 아이들이 친부 확인 소송을 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스타벅’이라는 가명으로 병원에서 정자 기증 아르바이트를 했던 데이비드는 친구인 아보캇(앙투안 베트랑)에게 변호를 부탁한다. 아보캇이 재판을 준비하는 동안 데이비드는 주체 못할 호기심에 사로잡히고, 결국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자식들을 하나둘 찾아나선다.
데이비드는 <브로큰 플라워>의 돈(빌 머레이)과는 사정이 다르다. 돈이야 많은 여자들과 실컷 즐겼지만, 데이비드는 고작해야 컵에 정액을 받아내고 소정의 수고료를 받았을 뿐 아닌가. 그런데 난데없이 반쪽짜리 자식들로부터 소송을 당했으니 이보다 더한 낭패가 없다. 19살 아들을 찾아내야 하는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과한 돈과 달리 데이비드는 진짜 자식을 얻기 위해선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는 자식들을 어떻게든 물리쳐야 한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수백명의 자식이 생긴 한 남자의 이야기, 그 자체에서 웃음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데이비드가 자식들의 뒤를 밟으면서 수호천사 행세를 하는 해프닝이야말로 이 영화의 폭소 뇌관이다(그의 티셔츠를 눈여겨보라. <어벤져스> 캐릭터들이 박혀 있다).
<사랑이 지나간 후의 인생>(2000), <대단한 유혹>(2004)의 각본을 쓴 켄 스콧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Mr. 스타벅>은 꽤 정교하게 고안된 코미디다. 주인공이 미션을 수행하면 곧바로 위기에 내몰리는 식으로 사건을 배열해놓았는데, 이음새가 거칠거나 억지스럽지 않다. 자신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 중에 전도유망한 프로축구 선수, 근사한 외모의 배우지망생이 있음을 두눈으로 확인한 데이비드는 잠시 으스대지만, 곧바로 자신의 부재로 인해 삐뚤어진 아이들의 뒤치다꺼리까지 감내해야 한다. 데이비드가 유일한 특기인 거짓말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 역시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스타벅은 캐나다에서 “가장 장수했던 우량소”의 이름이다. 전세계 45개국, 68만5천회분의 정자가 판매됐으며, 20만두 이상의 소가 태어났다. “실제로 정자 기증을 통해 160여명의 자녀를 둔 남성도 있었고, 260명에게 생명을 준 남성도 있었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500명의 아버지가 된 경우도 있었다” 켄 스콧 감독의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Mr. 스타벅>이 정자왕 데이비드의 자식 거두기 소동으로 일관하는 건 아니다. 데이비드가 수백명의 자식들과 조우하는 험난한 과정은 데이비드가 예비 아빠로서 정말 자격이 있는지에 관한 실험이기도 하다. 켄 스콧 본인이 연출하는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품이 어떤 모양새로 탈바꿈할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