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무화과나무 안의 아빠 <더 트리>
2012-09-12
글 : 이화정

호주의 전원 마을, 나무가 있는 그림 같은 집에서 부부와 네 아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던 가장 피터(아덴 영)의 사고사로 행복은 종결된다. 네 아이를 데리고 이제 황폐해진 풍광을 헤쳐나가야 하는 건 오롯이 엄마 던(샬롯 갱스부르)의 몫으로 남았다. 남은 자가 안고 가야 할 고통의 터널은 생각보다 깊고 처절하다. 여덟살 딸 시몬(모르가나 데이비스)이 찾아낸 해결책은 집 앞의 무화과나무다. 나무 안에 죽은 아빠의 영혼이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어린아이의 지나친 상상력에 불과해 보이지만, 병들어 있는 가족의 마음엔 이 순진한 믿음이 점점 절실해진다.

애석하게도 이 이야기는 나무를 가꾸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다. 가뭄이 닥치면서 커다란 나무뿌리는 던의 집뿐만 아니라 이웃집까지 위태롭게 만든다. 가족이 살자면 나무를 잘라야 한다. 호주 소설 <나무에 살고 있는 아빠>를 원작으로 한 <더 트리>는 상실과 극복의 문제에 관한 상징적인 해석이다. 그늘과 안식을 주던 나무가 위협적 존재로 변모하는 순간, 모든 건 받아들여야 할 자연의 섭리가 된다.

<더 트리>는 가족의 혼란을 마술적 세계와 결합함으로써 강요하지 않지만 먹먹한 울림을 전달한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묵직한 힘이다. 원작에 매료된 줄리 베르투첼리 감독은 이미 판권을 사간 프로듀서가 있다는 걸 알고 함께 작업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내면의 불안과 아픔을 잔잔하게 표현한 샬롯 갱스부르의 안정된 연기와 나무가 아빠라는 믿음을 관객의 마음까지 전달해주는 시몬 역의 소녀 모르가나 데이비스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더불어 마술적 세계를 표현할 무화과나무를 찾는 데만 수천 그루의 헌팅이 진행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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