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이블4: 끝나지 않은 전쟁 3D>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 속에 또 한번 앨리스를 남겨놓은 채 끝나버렸던 것이 불과 1년 전. 그사이 생체무기 제조사 엄브렐라는 좀비 바이러스를 통해 지구 점령의 목표에 또 한발 다가갔다. 엄브렐라의 지하 감옥에서 눈을 뜬 앨리스가 그 지옥을 탈출하려면 끈질기게 따라붙는 언데드들을 처치하는 일이 우선이다. 이 게임의 규칙에 순종적인 여전사에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가족의 탄생’이다. 앨리스는 엄브렐라가 실험용으로 제작한 복제인간 앨리스를 엄마로 생각하며 살아온 소녀 베키를 진짜 딸처럼 돌본다. 모성애는 전편에서 초능력을 잃은 여전사의 최고 무기로 둔갑한다. 이 한 가지 변화를 제외하자면 현실의 도시들을 무대로 한 ‘최후의 심판’은 ‘인류의 멸망’(3편)이나 ‘끝나지 않은 전쟁’의 역사를 반복하는 시퀄에 다름 아니다. 종말론의 유혹은 강력하다.
거부해야 마땅한 또 하나의 유혹은 진화론이다. 캐릭터들의 진화부터 게임 서사의 진화, 액션 연출의 진화, 심지어 3D 기술의 진화까지.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들도 “더 커지고 더 훌륭해졌다”(Bigger and Better)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하지만 실상 그런 말들은 상투적 수사에 불과하다. 제작비의 규모는 커졌을지 몰라도, 상상력의 규모는 훨씬 작아졌다. 액션은 한층 둔감해졌으며, 좀비의 입모양이나 네메시스의 저장고는 괴수영화들에서 이미 선보였던 디자인이고, 기하학적 세트도 1편의 추억에 잠기게 할 따름이다. 관객은 이미 누가 어디에 숨었는지 다 아는 숨바꼭질의 술래가 된 기분일 수밖에 없다. 원작 게임 <바이오 하자드>에 대한 이 어설픈 복제품은 충성심을 지닌 유저들만을 겨우 유인할 수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