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평등과 화해를 노래하는 서사시 <화벽>
2012-09-26
글 : 윤혜지

선비 주효렴(덩차오)은 도적 맹용담(예성)의 뒤를 쫓다가 들어간 사원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벽화를 본다. 잠시 뒤 벽화에 그려진 여인 무단(정솽)이 주효렴의 눈앞에 실제로 나타나고, 주효렴은 홀린 듯 그녀를 따라 벽화 속 세계로 들어간다. 꽃의 이름을 단 선녀들이 가득한 그곳은 독단적인 여왕(염니)이 다스리는 금남의 세계다. 작약(손려)과 무단은 여왕의 눈을 피해 주효렴을 숨겨주다가 불지옥에 갇히게 되고 주효렴은 여인들을 구하기 위해 맹용담과 선녀들의 도움을 받아 여왕을 상대로 분투한다.

<화벽>은 중국의 기서 <요재지이> 중 ‘벽화 속 여인’ 에피소드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영화는 한편의 러브 스토리이기보다 평등과 화해를 노래하는 서사시에 가까운데, 결말부에 가서야 조금씩 드러나는 주효렴과 작약의 멜로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사랑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여왕과 작약이 주효렴으로 인해 남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거나, 갈등하던 주효렴과 맹용담이 극적으로 화해하거나, 하인을 무시하던 주효렴을 하인의 등짐을 나눠 지는 호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등으로 근원적인 인간애를 강조하며 끝을 맺는다. 서양의 판타지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그리스 양식의 건물은 이질적인 웅장함을 뽐내며 선계를 완전한 환상의 공간으로 바꾸어놓는다. 오보령 의상감독이 ‘빛’에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는 선녀들의 하늘하늘하고 화려한 의상은 <화벽>의 세 남자뿐만 아니라 관객의 시선까지 단번에 홀려버린다. 종종 쉬이 동의하기 힘든 장면들이 있음에도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미 선녀들의 고운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 뒤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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