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랑일까>에서 이별을 피할 수 없게 된 5년지기 부부, 루(세스 로건)와 마고(미셸 윌리엄스)는 힘겹게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루의 말은 조각나 있고, 마고의 말은 지워져 있다. 루는 떠나려는 마고를 앞에 두고 자기 얼굴을 마구 문지르며 완성되지 않는 문장을 뱉었다 삼켰다 한다. 이미 오래전에 완성해놨다고 믿었던 사랑이 실은 공기 중에서 느리게 부식해왔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의 대화도, 아니, 그의 독백도 하염없이 부스러진다. 그 비가역 반응의 부산물이 되어버린 루는 마고를 상대로 남몰래 진행해왔던 초장기 프로젝트 농담 하나를 털어놓는다. 중단된 농담과 함께, 멈춰선 사랑을 모른 척하려던 그의 노력은 그렇게 완전한 실패를 맞는다.
이 5분 남짓한 시간은, 약간 과장하자면, 세스 로건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다. 아무리 무거운 드라마를 운반해야 할 때도 늘 진담에 농담을 얼마간 섞어왔던 그다. <퍼니 피플>이나 <50/50>에도 잘 나와 있듯, 죽을병에 걸린 친구 앞에서도 그는 아랑곳않고 19금 농담을 쏟아내고는 했다. 어쩌면 그가 맡은 캐릭터들에게 농담은 삶에서 주어진 불편과 고통을 잠시 잊기 위한 일종의 진통제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그의 농담은 아무 효과 없는 위약이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하키를 하다 고환 한쪽을 잃은 놈이 있었어. 난 적어도 양쪽이 다 있으니 좀 나은 건가? 제기랄.” 겨우 짜낸 농담도 기껏해야 짧은 자조로, 다시 깊은 탄식으로 이어질 뿐이다. 농담이라는 방패를 잃은 그는 맨손으로 이별을 상대해야 한다. 그 불리한 경기에서 루는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스 로건이라는 배우는 끝내 이긴다. 그는 더이상 기능하지 않는 농담으로부터 감정의 작용을 일으켜낸다.
농담을 세공하는 그의 재능은 타고난 것이자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진 것이다. <사고친 후에>에서 그가 맡았던 벤 스톤처럼 캐나다 밴쿠버에서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난 그는 13살, 부모님의 권유로 레즈비언바 로터스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자신보다 한참 나이 많은 누나들 앞이었지만 꼬마는 대범했다. “저희 엄마 말로 의사는 전공 분야가 구체적일수록 돈을 더 많이 번대요. 그래서 저는 결심했죠. 왼쪽 젖꼭지 전문의가 되겠다고.” 이미 또래 사이에서 제일 잘나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었음은 물론이다. 바르미츠바(유대교에서 13살이 된 소년의 성인식)에서도 마이크는 늘 그의 차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단짝 에반 골드버그와는 코미디영화 각본까지 착수한다. 10년 뒤쯤 실제로 영화화된 <슈퍼 배드>였다. 이후 둘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짝꿍 작가가 된다.
조숙한 유머감각? 노안 연기!
코미디에 대한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자가 주드 애파토우 감독이다. 흥행에는 부진했으나 컬트 팬들의 지지를 받게 될 TV쇼 <프릭스 앤드 긱스>로 막 도움닫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는 좀 웃길 줄 아는 꼬마의 즉흥연기에 사로잡혔고, 곧 꼬마를 자신의 프로듀서 겸 공동 각본가 겸 스크립터 겸 주요 배우로 삼는다. 말하자면 그를 주드 애파토우 사단(‘프랫 팩’이라 그들 스스로 칭했던 공동체)에 영입한 것이다. 주드 애파토우의 차기 TV쇼 <언디클레어드>(Undeclared)부터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사고친 후에> <슈퍼 배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퍼니 피플>을 포함해 20편이 넘는 작품을 거치며 소년은 20대에 접어들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할리우드 코미디 부흥기의 중심에 서 있었다.
배우로서 세스 로건은, 그러나 여전히 작가 세스 로건의 부분집합이었다. “저는 다른 배우들보다 훨씬 일찍부터 영화에 참여하는 편이죠. 각본이 나오기 전부터 감독과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니까요. 촬영이 시작되면 제 분량이 없는 날에도 현장에 나가요. 갑자기 새로 만든 장면에 넣으면 재미있을 대사를 생각해내기도 하고 찍고나서 재미없는 장면은 재미없다고 말해주기도 하죠. 그 모든 게 제 일이에요.” 그의 생산력을 감당하기에 배우라는 영역은 너무 제한적이었던 것일까. 그는 급기야 조셉 고든 레빗 주연의 <50/50>에 에반 골드버그와 메인 프로듀서로 뛰어들었다. <알리 G 쇼> 때 함께 작업했던 배우 윌 레이저의 실제 암 투병기를 토대로 한 이 드라미디(dramedy, 드라마와 코미디의 합성어)로 그는 주드 애파토우로부터의 독립을 훌륭히 증명해 보였다.
한편 그는 배우로서는 실패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고친 후에>가 흥행하면서 대중이 그를 배우로 또렷하게 기억하게 된 뒤에도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직도 스스로를 배우라고 소개하기 꺼려진다. 내가 영화에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자못 불편해서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그냥 막 웃는다.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항상 똑같이 불편하다.” 배우로서 자신을 대단치 않게 여겼던 그의 태도 아래에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두터운 몸매와 두터운 목소리보다 위력있었던 건 그의 노안이었다. 일찍이 조숙한 유머감각을 지녔던 그는 노안 연기에 비범한 능력을 발휘했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를 찍을 당시 실제로는 23살이었던 그는 40살 언저리의 배우들, 역시 주드 애파토우 사단의 일원이었던 스티브 카렐이나 폴 러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연기 경험이 훨씬 많은 배우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그의 존재감과 화려하지 않은 외모를 관객의 호감을 사는 데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여유로움이 그의 배우적 자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넉넉한 풍채나 굵직한 웃음소리도 그만의 것이 되었다.
좀더 섬세하고 폭넓어진
<우리도 사랑일까>는 그가 오직 배우로서 참여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의 필모그래피의 분기점이 될 만한 영화다. 그의 배우로서의 도약에 대한 외신의 반응은 호평일색이다. 하지만 정작 세스 로건은 그런 평가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길 원하는 눈치다. “이전에 제가 맡아왔던 캐릭터들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똑같이 자연스럽고자 노력했고요.” 루가 허구한 날 요리하는 치킨의 비유적 의미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육류 중에 따지자면 괜찮은 고기죠. 하지만 특별히 흥분을 일으킬 정도로 맛있는 고기는 아니잖아요.” 마고에게 루는 그런 남자였다. 말하자면 세스 로건도, 관객에게 자신은 그런 배우라고 겸손을 떠는 중인 것 같다. 루로 분하기 위해 색다른 레시피를 쓰지는 않았노라고. 하지만 그가 두터운 육체와 두터운 음성만큼이나 두터운 연기력을 확보한 배우로 성장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어느덧 서른 길목에 선 세스 로건에게 농담은 절대적 무기가 아니라 상대적 무기가 됐다. <그린 호넷> <50/50>을 거치며 그의 바지 치수가 준 만큼 그의 웃음소리는 낮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희극적 재능의 퇴색을 뜻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의 유머가 좀더 섬세하고 폭넓어졌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는 대마와 섹스를 코앞에 들이밀지 않고도 잔잔한 유머로 암과 이별에 대처하는 법을 일별한다. 그리고 생계 밀착형 코미디로 솜씨를 가다듬는 동안 억눌러놨던 SF에 대한 호기심도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 그 호기심이 <황당한 외계인: 폴>에서 급한 대로 조금 해소됐다면, 현재 그가 감독 데뷔작으로 준비 중인 <엔드 오브 더 월드>에서는 더 과격한 형태로 발현될지도 모른다. 주드 애파토우 아래서 함께 자랐던 제임스 프랭코, 제이슨 시걸, 조나 힐, 제이 바루첼과 다시 뭉친 SF코미디다. <프릭스 앤드 긱스>로부터 그가 얼마나 멀리 나아왔는지, 그의 농담은 또 얼마나 다채로워졌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