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부산국제영화제=티켓전쟁’이 공식처럼 돼버렸다. 어떤 영화는 몇초 안에 표가 매진되어버리니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다. 게시판에는 인기있는 영화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사연들이 구구절절하다. 3, 4회 정도로 제한된 상영횟수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인기 폭발인 영화들도 정식 개봉을 해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예 국내 수입조차 안되는 영화도 부지기수다. 나 역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제작하거나 수입한 영화를 뺀 다른 영화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티켓을 구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매일 밤 늦도록 벌어지는 술자리다.
예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외국 작품들 가운데 유명한 감독들의 작품이나 칸, 베를린, 베니스 등에서 상 받은 작품을 제외하곤 국내 수입사가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부산이나 부천, 제천, 전주에서 상영된 대부분의 화제작들이 이미 수입이 되었거나, 영화제 이후에 정식 수입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제는 아시아 국가 중 일본과 중국, 그리고 유럽에서는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영화들의 국내 정식 개봉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나의 부산국제영화제 관람 리스트에 있던 영화 가운데 아직도 주인을 못 찾은 영화는 필리핀이나 이라크, 터키, 페루 등 제3세계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미국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영화가 국내 흥행이 힘든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가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프랑스, 인도영화 중 나름 의미있는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가 나오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제3세계 영화는 영화 바이어에겐 무관심의 대상이다. 오래전 <잔다라>라는 타이영화를 국내에 소개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영화가 한국에서 최초로 개봉된 타이영화일 것이다. 이후 <디 아이> 같은 흥행작도 있었지만 타이영화가 한국에서 소개되는 일은 드물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인도네시아영화 <동물원에서 온 엽서>는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보자마자 구매를 결정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관심이 간 영화는 필리핀영화였다. 아직 국내에 팔리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감독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구매의사를 전달했다.
개인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폐막작으로 방글라데시영화 <텔레비전>을 선정한 사실에 무한 찬사를 보낸다. 그 일이 방글라데시에서는 엄청난 뉴스였다는 사실을 듣고 2000년에 <춘향뎐>이 칸 경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은 단일민족국가이지만, 이미 이 땅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한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즐거움과 동시에 그들의 모국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기쁨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 문화를 세계화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또 다른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작은 배려가 아닐까?
<텔레비전>은 볼 수 있을까? <텔레비전>은 아직 수입되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을 이틀 앞둔 10월11일 현재까지 공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ACF인큐베이팅펀드와 ACF후반작업지원펀드를 통해 제작된 <텔레비전>은 이번 영화제를 통해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영화는 극단적 이슬람주의자가 지배하는 어느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현대 문명을 금지하는 지배층과 TV의 매력을 알게 된 사람들간의 갈등을 유머러스하게 펼쳐놓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방글라데시영화라는 선입견만 없으면 의외로 재밌는 작품으로 받아들일 것”이라 말했다. “수입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영화제로서는 적극적으로 영화를 알릴 것이다.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