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범죄와의 전쟁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
2012-10-17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빨리, 잭. 방아쇠를 당겨.”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할 나이의 삼형제가 돼지우리에 모였다. 형들의 보챔에 막내는 서투르게 장총을 장전하지만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보다 못한 형 하나가 리볼버를 꺼내든다. 막내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탕 소리와 함께 아기돼지 한 마리가 쓰러진다. 단번에 눈길을 잡아끄는 이 오프닝은 주인공 본두란 삼형제의 성격과 관계를 제시하며 영화 전체의 기조를 요약적으로 전달한다. 바로, 폭력에 대한 가감없는 묘사다.

1931년 금주령이 내려진 미국의 프랭클린 카운티, 성인이 된 삼형제는 밀조, 밀매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1차대전 때 부대 전체가 바다에 빠져 죽었지만 혼자 살아남았다는 큰형 하워드(제이슨 클락), 같은 해 마을을 덮친 스페인 독감을 혼자 이겨내는 바람에 가장이 된 작은형 포레스트(톰 하디)는 자타가 공인하는 ‘불사조’로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인정을 아직 얻지 못한 막내 잭(샤이어 라버프)은 매일 자신도 사업에 끼워달라고 조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마을에 법이 들이닥친다. 사디스트 특별수사관 찰리 레이크스(가이 피어스)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고하고 본두란 삼형제를 본보기로 삼으려 한다. 두 진영간의 초반 기싸움이 이 영화의 도입부를 집중력있게 끌고 나간다. 힘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드문드문 발견되는 가운데, 특히 두터운 아우라의 톰 하디와 웃음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가이 피어스의 대결은 한동안 관객을 붙들어놓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곧 영화는 그 쾌락을 취하기 위해 지나친 고생을 사서 하는 격이 되고 만다. 먼저 많은 인물들이 불필요하게 동원된다. 그중 걸출한 배우들이 맡은 세 인물, 도시의 주인 플로이드 배너(게리 올드먼), 도시에서 도망 온 매기 보퍼트(제시카 채스테인), 잭이 좋아하는 소녀 베르사 미닉스(미아 와시코스카)는 개별적으로나마 흥미로울 수 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삼형제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기능적으로 배치된 느낌을 준다. 중심 플롯을 감당하기 위해 서브 캐릭터를 다수 등장시키다 보니 자연히 이야기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진다. 마을에 데려다놓은 인물들을 처리하기 위해 상당량의 총탄 또한 소모된다. 액션과 서사와 캐릭터의 삼박자가 어긋나면서 셀 수 없을 만큼의 무고한 죽음이 치러진다. 그 모든 약점을 덮어둘 수 없는 것은 다음의 질문 때문이다. 왜 감독 존 힐코트와 각본가 닉 케이브는 전형적인 갱스터 스토리를 도시에서 산골 마을로 옮겨왔는가. 아마 폭력에 웨스턴의 품위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그들은 그림을 가져왔을 뿐 윤리는 가져오지 못했다. 초반부에는 금주령 시대를 전혀 새로운 풍경으로 비춰내는 카메라에 감탄을 감추기 힘들지만, 그것이 전부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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