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이요원]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2012-10-18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데뷔 10년 넘어 첫 스릴러 도전한 <용의자 X>의 이요원

<용의자 X>의 화선(이요원)은 참으로 박복한 여자다. 어렵게 과거를 정리해놓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와서 새 출발을 했는데 전남편이 찾아올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조카가 맞는 걸 보고 구해야겠다고 전남편의 목을 조른 것뿐인데 진짜 죽을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자수할 것인가, 아니면 시체를 은폐할 것인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 그때, 정적을 깨는 벨소리가 울린다. 옆집 남자, 석고(류승범)다. 도와주겠단다, 지켜주겠단다, 자신의 말대로만 하면 안전할 거란다. 그때부터 화선은 어쩔 수 없이 석고의 공모자가 된다. 이번에 처음으로 스릴러 장르에 출연한 이요원은 화선을 두고 “답답한 여자인 만큼 촬영하는 내내 힘들었지만, 덕분에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보람있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드라마 <마의> 촬영으로 정신없다고 들었다.
=이제 시작됐다. 성인 분량이 방영되면 더 바빠질 것 같다.

-기자 시사 때 영화는 봤나.
=봤다.

-스릴러 장르 속 모습은 이번이 처음인데. 낯설진 않던가.
=처음에는 모니터한다고 생각하고 봤더니 아쉬운 면만 보이더라. 그러다가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많이 울었다. 특히 마지막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은 읽어봤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안 읽어봤다. 출연을 결정하자마자 읽었다.

-어떻던가.
=재미있더라.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남자주인공이 류승범씨라고 해서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류승범이 “거짓말하네” 말하며 옆을 지나가자) 아니야, 진짜야. 그런데 원작을 읽어보니 시나리오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더라. 원작의 주인공 ‘이시가미’는 40대 중년이니까.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화선은 어떤 여자던가.
=영화에서 표현한 것보다 훨씬 더 보호해주고 싶은 여자였다. 수동적이고, 불쌍했고. 그래서 감독님이 이 시나리오를 내게 제의한 이유를 알게 됐다.

-그게 뭔가.
=내가 보호해주고 싶은 이미지가 강하니까. 촬영 들어가면서 감독님께서 화선의 캐릭터에 살을 불이려고 한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살을 붙이려고 했나.
=마냥 수동적으로 석고의 계획에 따라가는 여자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화선에게 일어난 사건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석고의 공모자가 되는 것을 선택하는 여자로 그리려고 한 것 같았다.

-방은진 감독은 “화선이 주인공이지만 물리적인 비중이 적은 만큼 이요원 입장에서는 출연을 꺼릴 수도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출연을 결정해주었다”고 했다.
=이건 누가 봐도 석고의 이야기이자 류승범의 영화다. 그럼에도 스릴러 장르가 이번이 처음이고, 류승범이라는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거라 출연하고 싶었다. 이 작품이 많은 공부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방은진 감독이 요구한 화선은 어떤 모습이었나.
=원숙미가 있는 여자. 그걸 표현하려고 애를 썼는데 쉽지 않더라.

-어떤 면에서 쉽지 않았나.
=내 나이가 원숙미가 느껴지기엔 어중간한 나이고. 외모가 원숙한 분위기가 아니잖나. 그래서 감독님과 화선은 과거가 있지만 원래는 햇살처럼 밝고 희망적인 여자라고 절충했다. 어쩔 수 없는 주변 상황 때문에 어두운 삶을 살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것을 정리하고 새 출발하기 위해 이사를 왔는데 더 안 좋은 일을 겪게 된 거다. 이 여자가 항상 불안한 상태인 것도 계속 변화하는 주변 상황 때문이다.

-제작보고회 때 “촬영 초반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촬영을 하면서 화선이 이해됐다”고 말했다. 그게 언제였나.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화선이 전남편을 죽이는 살인사건을 촬영할 때부터였다. 아무래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고. 이 장면을 찍고 나니까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겠더라.

-그 장면은 촬영 회차의 초반부에 찍었나, 후반부에 찍었나.
=그건 세트 촬영이었다. 야외장면을 다 찍고 난 뒤 세트에 들어갔으니까, 후반부에 찍었다고 볼 수 있다.

-세트 촬영을 부산에서 했다. 워낙 힘들어서 “부산이 싫을 정도”라고 말했는데.
=세트장면이 이 영화의 주요 공간이고, 힘든 신은 전부 세트 촬영이었고. 희한하게 세트 촬영할 때 날씨가 굉장히 안 좋았다. 영화의 내용처럼 정말 우울했다. 답답하고.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화선이 답답했나.
=답답한 여자였다. 살인사건 현장에 함께 있던 조카에게조차 자신의 마음을 숨겨야 하고. 괜찮지 않은 일인데,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라고 안심시켜야 하는 입장이고. 자신의 마음을 털어낼 사람도, 기댈 사람도 없고. 자신을 도와주는 옆집 남자 석고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석고도 계속 의심을 해야 했기에. 매 순간 불안해야 하는 여자라 찍으면서도 답답했던 것 같다.

-영화의 초반부, 전남편을 죽인 뒤 석고가 벨을 누른다. 그때 화선의 표정이 복잡 미묘했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어땠나.
=자신의 감정을 100% 다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여자라 감정의 강약을 조절하는 게 유독 힘들었다. 감정을 숨기고 있지만 관객에게 화선이 무서워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니까.

-화선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거였을 것 같다. 고작 일면식 정도 나눈 옆집 남자가 대체 왜 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걸까.
=나는 이 질문을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석고가 화선에게 왜 접근하느냐는 일차적인 문제다. 석고가 날 도와주겠다, 숨겨주겠다, 내 조카를 지켜주겠다고 하니까 화선은 본능적으로 그가 시키는 대로 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석고가 말한 대로 되고 있는 걸 보고 화선은 불안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때부터 석고의 마음이 궁금해지니까. 그 점에서 화선은 원작과 달리 정말 현실적으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화선 역시 석고의 마음을 눈치챘을 텐데.
=눈치챘겠지. 영화에도 그게 나오고. 그러나 화선은 석고의 사랑이 진실됐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과거의 남자가 그랬듯 석고 역시 내게 뭔가를 바라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이요원이 화선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내가 화선이었더라도 화선처럼 행동했을 것 같다.

-드라마 <선덕여왕> 이후 다시는 사극을 안 하겠다고 했는데. 또 사극이다.
=생각보다 빨리 선택했다. 사극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마의>의 시놉시스를 재미있게 봤다.

-어떤 점이 재미있었나. 캐릭터가 속시원하고, 멋진 것 같더라. 외유내강형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전작과 다른 느낌 같더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여주인공은 빤하다. 그러나 이번 드라마에서 맡은 강지녕은 양가 규수의 모습도 있고, 어릴 때 거리에서 생활할 때의 성격도 남아 있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더라.

-다양한 모습과 역할에 대한 갈증이 있나보다.
=많이 있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언제였냐고 묻자) 최근에 그랬던 것 같다. <용의자 X>와 <마의> 하기 전에. 시나리오 들어오는 것도 비슷비슷했고. 모두 나한테 어울리는 것 같은 옷만 주잖아. 사람이라면 다른 옷도 입어보고 싶은데. 항상 밥만 먹는 게 아니라 어떨 때는 이탈리아 음식도 먹고 싶고 그런 건데. 그런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그때 <용의자 X>가 들어왔다. 스릴러 한번 해볼까. 기존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다른 모습들이 많았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점에서 <용의자 X>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도 갈 수 있구나라는 걸 알게 해준 작품이다.

-결혼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
=책임감이 생긴 것?

-한 아이의 엄마로서 화선을 연기하는 데 뭔가 도움이 되던가.
=… 모르겠다.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자.

-초반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시사회에서 아쉬운 점이 눈에 보였다고 했는데. 그게 뭔가.
=그냥. 나 자신을 좀더 내려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를 좀더 캐릭터에 던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더라. 현장에서 그러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이런 장르의 작품은 처음 해보는 거라 겁도 많이 났고. 경험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니. 연기 경력은 많지만 다양한 장르영화를 경험하진 않았으니까. 나중에 <용의자 X>보다 더한 작품이나 비슷한 작품을 만났을 때 감을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용의자 X> 때문에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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