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추모] 굿바이, 엠마뉴엘
2012-10-23
글 : 강병진
실비아 크리스텔 Sylvia Kristel 1952-2012
<엠마뉴엘>

추억의 여신이 잠들었다. <엠마뉴엘>의 배우 실비아 크리스텔이 한국시간으로 지난 10월18일 영면했다. 사인은 암이다. 이미 10년 전에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지난해 재발하면서 올해 7월에는 뇌졸중을 일으키기도 했다. 실비아 크리스텔의 에이전트는 그녀가 “잠을 자고 있던 도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녀의 나이는 죽기에는 너무 이른 60살이었다.

실비아 크리스텔은 195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호텔을 경영하던 부모를 둔 덕분에 그녀는 “장롱같이 생긴” 호텔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IQ 164의 명석한 두뇌를 가진 소녀는 4학년을 건너뛰면서 학교를 다녔고, 17살에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실비아 크리스텔이 영화에 발을 딛게 된 건 1973년 미스 TV유럽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부터다. 연기 경력이 전무한 그녀는 바로 이듬해인 1974년, 쥐스트 자킨 감독의 <엠마뉴엘>에 주연으로 발탁됐다. 사실 장편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기는 이 영화의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엠마뉴엘>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시나리오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영화 역사적으로 봐도 정규극장에서 처음 상영된 소프트 포르노였던 이 작품은 전세계에서 3억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에서는 20년 뒤인 1994년에 정식으로 개봉했지만, 이미 80년대 한국에서도 소나기가 내리는 화질의 비디오테이프들이 돌면서 <엠마뉴엘> 신드롬을 일으켰다. 실비아 크리스텔은 한 인터뷰에서 “만약 비디오테이프까지 계산했으면 <엠마뉴엘>을 본 관객은 6억5천명에 가까웠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서전

<엠마뉴엘> 이후에도 실비아 크리스텔은 ‘엠마뉴엘’이었다. 속편인 <엠마뉴엘2>(1975), <엠마뉴엘3: 굿바이 엠마뉴엘>(1977)뿐만 아니라 <차타레 부인의 사랑> (1981), <마타 하리><1985>, 미국에 건너가 찍은 <개인교수>(1981)의 니콜 멜로 또한 엠마뉴엘로서 실비아 크리스텔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그녀가 출연한 <엠마뉴엘> 시리즈는 <엠마뉴엘4>(1984)를 비롯해 ‘복수’, ‘마술’, ‘사랑’의 부제를 단 3부작(1992)을 거쳐 <엠마뉴엘7>(1993)까지 이른다(이 시기에 그녀는 한국영화 <성애의 침묵>(1992)에도 출연했다). 엠마뉴엘을 보낸 이후에도 TV와 영화를 오가며 연기를 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의 사생활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11살 때부터 필터를 빼고 담배를 피웠던 그녀는 결혼에 실패하면서 알코올에 중독됐고, 마약에도 손을 댔다. 지난 2006년 다큐멘터리 <헌팅 엠마뉴엘>에 출연했을 때, 그녀는 코카인 구입을 위해 <개인교수>에 대한 지분을 15만달러에 팔았다고 밝히기도 했다(<개인교수>의 미국 내 수익은 2600만달러가 넘었다).

지난 2007년, 어두운 삶에서 벗어난 실비아 크리스텔은 <Undressing Em manuelle: A Memoir>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낸 바 있다. 당시 55살이었던 그녀를 인터뷰한 <더 인디펜던트> 기자는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운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고 썼다. 피부를 칭찬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피부는 유전이다. 나는 비싼 크림을 쓰지 않는다. 니베아면 충분하다. 뭐하러 돈을 낭비하나?” 암이 재발하기 전까지 그녀는 남은 여생을 그림을 그리고, TV드라마를 보고, 큰 냄비에 파스타를 삶으면서 보냈다. 전세계 수많은 남성들의 밤을 달뜨게 했던 여신 또한 그렇게 한명의 평범한 여자로 살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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