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시네마톡] 맨 얼굴로 들이대는 느낌이 좋다
2012-10-23
글 : 윤혜지
사진 : 백종헌
박루슬란 감독이 함께한 <하나안> 시네마톡
영화평론가 김영진, 감독 박루슬란, <씨네21> 기자 이화정(왼쪽부터).

10월16일 CGV대학로 무비꼴라쥬관에서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씨네21> 이화정 기자, 박루슬란 감독이 함께한 <하나안>의 시네마톡이 열렸다. 영화가 남기고 간 무거운 분위기는 이화정 기자와 박루슬란 감독의 환한 인사로 이내 걷혔다. 김영진 평론가는 “감독에게 있어 장편 데뷔작은 앞으로를 가늠하는 출사표이고 분신이지 않나. <하나안>은 출구가 없다. 플롯 설정부터 엔딩 이미지까지 <하나안>이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어떤 핵심이 되는지 궁금하다”는 말로 시네마톡의 포문을 열었다. 박루슬란 감독은 <하나안>이라는 데뷔작으로 인해 자신의 영화세계가 특정한 스타일로 묶이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영화를 어렵게 배워서 항상 계산적인 생각이 있다. 나에게 지금 주어진 게 뭔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뭔지를 정확히 알고 영화를 하려고 한다”는 박루슬란 감독은 시네마톡 내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태도로 영화와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루슬란 감독에게 제14회 타이베이영화제 최우수 신인감독상을 안긴 데뷔작 <하나안>은 청년 세대를 주인공으로 한 보편적인 성장담이다. 고려인 4세라는 박루슬란 감독의 타이틀과 우즈베키스탄 로케이션, 비전문배우 스타니슬라브 장의 출연은 <하나안>을 얼핏 고려인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로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박루슬란 감독은 “주인공은 고려인이지만 이 영화는 고려인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스타쓰가 어떤 민족인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떤 인간이고, 어떤 인생을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로 영화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았다. <하나안>이 힘있는 영화가 된 데에는 주연을 맡은 비전문배우 스타니슬라브 장의 살아 있는 연기가 크게 작용했다. 좋은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감독은 스타니슬라브 장에게 어떠한 스크립트도 주지 않았다고 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고 하자 감독은 “그게 바로 연출력”이라는 재치있는 언급으로 객석에 폭소를 안겼다.

김영진 평론가가 “스타쓰의 삶에는 온기가 별로 없다. 한 인간이 단독자로 살 수만은 없는데 왜 주변 얘기가 전혀 안 풀려나왔을까 의아했다”고 묻자, 감독은 “에피소드들이 더 있었는데 스타쓰의 정서에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많이 뺐다”고 답했다. 이어 이화정 기자가 “이상적인 공간을 찾아왔는데 그곳이 더 최악인 걸로 묘사됐을 때 거기서 부딪혀 깨지는 장면들이 오히려 적게 나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반문하자, 감독은 “스타쓰가 마약을 버리고 조폭들에게 맞아 죽으면서도 웃는 게 원래 엔딩이었는데 편집하다 보니 이게 결말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더라. 영화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편집에 얽힌 비화를 들려줬다.

영화 외적으로 고려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질문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감독은 “현재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려인의 역사와 사고방식을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이해 못할 수밖에 없다. 각자 갖고 있는 가능성이 다르니까 같이 손잡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끝으로 이화정 기자가 “외롭고 불안한 심리를 배우의 얼굴과 등을 통해 양면적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마무리했고, 김영진 평론가는 “단단한 스트리트 필름 같았고 맨 얼굴로 들이대는 느낌이 좋았다. 또 비전문배우를 내세워서 이렇게 강한 잔상을 남긴 것도 굉장한 성취라고 생각한다. 박 감독이 어디로 나아갈지 다음 영화가 참 궁금하다”고 총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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