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테헤란, 혁명으로 축출한 국왕이 미국으로 망명하자, 이란 국민들은 항의의 표시로 미국 대사관을 점령하고 직원들을 인질로 삼는다. 이 가운데 6명의 미국인들이 캐나다 대사관저로 도피하고, 이들을 무사히 구해내기 위해 구출 전문가인 토니 멘데즈(벤 애플렉) 요원이 투입된다. <혹성탈출>에서 영감을 받은 토니는 유령 영화제작사를 차리고 억류된 사람들을 현장답사 중인 스탭으로 위장시키는 엉뚱한 작전을 계획한다.
‘아르고’는 이 가상의 제작팀이 만들어낸 가짜 SF영화의 제목이다. 그러나 정작 ‘아르고 작전’ 자체, 할리우드와 CIA가 손을 잡고 미국 언론과 이란인들을 상대로 벌인 희대의 사기극은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닌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 아르고 작전의 전모는 18년간 기밀에 부쳐졌고, 2007년 한 잡지에 상세한 탈출기가 실리면서 본격적으로 공개되었다.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작전이었던 셈인데, 덕분에 관객은 ‘아르고’라는 가상의 SF영화와 이를 유희하는 현실의 ‘아르고 작전’, 그리고 그 작전의 진행상황을 담은 정치스릴러 <아르고>라는 세 갈래의 영화를 동시에 접하게 된다. 가상과 실재를 복합적으로 아우르는 영화의 성격 때문일까. <아르고>에는 장르적 활력, 다큐멘터리적인 질감, 풍자적인 유머 등이 다소 불균질하게 섞여 있다. 사기극의 밑그림을 그리는 할리우드 장면들은 기대보다 느슨하며, 클라이맥스의 에너지도 예측 가능한 난관이 꼬리를 무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아르고>는 관객이 탈출의 성공 여부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만든다. 전작 <타운>에 이어 또다시 연기와 연출을 병행한 벤 애플렉은 <아르고>를 통해 비로소 감독으로서의 잠재력을 과감히 발휘한다. 그는 인질과 CIA 요원, 워싱턴 관계자들을 둘러싼 긴박한 갈등관계를 물리적인 충격에 의존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재현하며 관객이 인물의 심리와 직관적으로 공명하도록 만든다. 타이트한 숏과 교차편집이 빈번히 쓰이는데, 이 익숙한 방식이 유려한 서사 리듬을 직조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작전에 조력한 특수분장 전문가 존 챔버스(존 굿맨)를 비롯해 실존인물들과 흡사한 외모의 배우들이 주요 배역에 캐스팅되었고, 그중 일부는 억류된 상황에 몰입하기 위해 실제 촬영 중 한시적인 고립 상태에 놓였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의 클래식한 시대적 분위기가 단순히 사료나 당대의 복식 스타일에 대한 고증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정적이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으로 들어찬 한편의 정치스릴러로서 <아르고>의 분위기와 리듬은 앨런 J. 파큘라나 시드니 루멧이 만들었던 1970, 80년대 정치드라마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흉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우선은 그 매끄러운 솜씨를 칭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