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어떤 천연덕스러움
2012-11-09
글 : 진중권 (문화평론가)
일러스트레이션 : 정원교 (일러스트레이션)
고문을 위한 예술

“스페인의 어느 미술사학자가 현대예술이 의도적인 고문의 형식으로 사용된 최초의 예를 발견했다. 1938년 칸딘스키와 클레, 브뉘엘과 달리로부터 영감을 받아 일련의 비밀 감방과 고문실이 바르셀로나에 지어졌다. 이는 프랑스의 무정부주의자 알퐁스 로랑치치의 작품으로, 그는 일종의 ‘사이코테크닉’(psychotechnic) 고문의 발명자였다. 그가 이른바 ‘색채 감옥’(colored cells)을 창조한 것은 프랑코 세력과의 투쟁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지젝의 <시차적 관점>(2006)에 나오는 얘기다.

아방가르드의 고문실과 근대화의 고문실

문제의 감방은 기하학적 추상과 초현실주의로부터 영감을 받아 색채의 심리적 속성에 관한 아방가르드 이론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침대는 누워서 자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20도가량 기울어진 채로 설치되었고, 6피트×3피트의 바닥에는 수감자가 앞뒤로 걸어다니지 못하도록 벽돌이나 그 밖의 기하학적 블록이 뿌려졌다. 수감자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은 벽을 바라보는 것인데, 거기에는 정육면체, 정사각형, 직선, 나선과 같은 패턴이 그려지거나 새겨져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패턴들이 정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가령 그 패턴들은 “색채와 투시법과 스케일의 트릭을 사용하여 인간의 정신을 혼란시키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벽에 그려진 그 어지러운 패턴들은 조명효과로 인해 벽에 그려진 그 어지러운 패턴들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로랑치치는 녹색을 선호하였는데, 이는- 그의 다양한 색채의 심리적 효과에 관한 이론에 따르면- 녹색이 우울(melancholy)과 슬픔의 감정을 자아내기 때문이었다”.

이 일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현대예술이 그 특성상 인간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발상이다. 지젝이 인용한 ‘색채 감옥’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도르노가 현대예술의 수용을 고문에 가까운 ‘고통’에 비유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 훈련되지 않은 귀로 난해한 현대예술, 특히 불협화로 가득한 현대음악을 듣는 것은 괴로운 일. 아도르노에 따르면, 현대음악이 이렇게 청중의 귀를 괴롭히는 것은 그 자체가 현대사회에 사는 인간의 고통을 미메시스한 것이라 주장한다.

현대예술의 원리를 원용한 ‘색채 감옥’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건물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서울대생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다가 숨진 남영동 대공 분실이다. 이 건물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것이 하필 한국 건축사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김수근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자기가 지은 그 건물에서 훗날 한 대학생이 물고문을 받다가 숨질 운명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건이 발생한 뒤에도 그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전해에 작고했기 때문이다.

‘색깔 감옥’과 달리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이루어진 것은 피지코테크닉(physicotechnic) 고문이었다. 건축가는 건물의 미적 특성으로 심리적 고통을 주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흔히 건물의 재료인 검은색 벽돌이 섬뜩한 느낌을 준다 하나, 경기대 안창모 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수원 화성의 건축에 사용된 한국적 재료를 사용한 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고문이 이루어지는 취조실은 지하에 짓기 마련이나, 대공 분실에는 지하실이 없고, 취조실이 5층에 있다고 한다.

“끔찍했던 시절의 건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한 외관의 천연덕스러움.” 물론 건축가도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모르지 않았으리라. 취조실로 쓰인 5층의 방들에는 신체가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고 긴 창문이 두개씩 달려 있다. 김수근의 옹호자들은 그 창문들이 실행자들의 손에서 변경됐을 가능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안 교수에 따르면 좁고 긴 창문은 원래 건축가가 즐겨 사용하던 형식이라고 한다. 개인의 양식이 고문의 용도와 자연스레 맞아떨어지는 “천연덕스러움”이랄까?

고문실의 베토벤 9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 태엽 오렌지>(1971)에는 고통을 주는 음악에 관한 얘기가 등장한다. 비행청소년 알렉스는 친구들을 이끌고 런던을 배회하며, 가련한 부랑자를 폭행하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그의 부인을 강간하고, 고양이와 함께 사는 여인을 살해하는 등 잔인한 폭력을 저지른다. 친구들의 배반으로 교화소에 끌려간 그는 거기서 ‘루도비코 법’의 첫 대상자가 된다. 폭력적인 장면을 보면 저절로 구역질이 나게 하는 약물을 투입해 범죄자를 교화하는 프로젝트다.

의자에 묶인 그의 눈앞에 온갖 폭력적인 영상이 펼쳐진다. 평소라면 그걸 보며 즐거워했겠지만, 약물이 투여된 그의 신체는 거기에 구역질로 반응한다.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교화소에서는 그가 평소에 좋아하던 베토벤의 9번을 골랐다. 알렉스는 여기에도 구역질을 일으킨다. “멈춰요! 멈춰요! 제발 부탁이야! 이건 죄악이야! 베토벤을 저렇게 쓰다니, 베토벤은 잘못한 거 없어요. 그냥 작곡만 했을 뿐이에요. 이렇게 아름다운 베토벤 음악을 들으면서 구역질이 나야 한다니 불공평해요.”

교화소에서 나온 뒤에도 알렉스는 베토벤의 9번을 들으며 괴로워하다가, 이를 못 견뎌 결국 자살까지 시도한다. 알렉스에게 고통을 준 것은 음악 자체가 아니었다. 현대음악이라면, 아도르노가 지적했듯이, 훈련되지 않은 귀에 고통스럽게 들리겠지만, 베토벤 9번은 고전음악이 아닌가. 문제는 연상이었을 거다. 투여된 약물은 폭력적 장면에만 반응하게 하나, 그 장면에 늘 동반됐던 것이 하필 베토벤. 그래서 베토벤을 들으면 구역질을 하는 조건반사를 하게 된 것이리라.

별이 빛나는 밤에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 1985>가 곧 개봉된다고 한다. 고 김근태 전의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총 110분의 러닝타임 중 80~90%가 고문장면이라고 한다.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 끔찍한 고문이다 보니 고문 자체가 사실적이어야 했다”고 한다. “특히 물고문 장면은 가장 참기 힘든 고역이었다. 코에 계속해서 센 줄기의 물을 집어넣는 신. 모든 고문은 박원상(김근태 역)이 참을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것이었고, 그는 죽을힘을 다해 견뎌냈다.”(<국민일보>)

이 끔찍한 사건의 배경이 된 것이 바로 김수근이 지은 남영동 대공 분실. 고 김근태 의원은 이 건축가의 작품(?) 속에서 무려 22일을 머물러야 했었다. 내 연구실 맞은편의 장경욱 교수가 그곳에서 <시계 태엽 오렌지>와 비슷한 사건도 있었노라고 내게 알려준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누군가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출처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고 김근태씨의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온몸을 파고드는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지를 때 김근태의 머리 앞에 있는 라디오에서는 <별이 빛나는 밤에>가 흘러나왔다. 온 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DJ의 멘트 소리, 젊음의 가슴을 적시는 발라드, 가요, 연주곡, 세계의 유행음악들. 김근태의 비명소리는 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킥킥거리는 젊음의 향연 속에 묻혀 옆방에서조차 들리지 않았다. 들을 수 있는 것은 다만 고통으로 일그러진 한 인간의 절규를 간단없이 삼켜버리는 음악소리뿐. 그날 이후 김근태는 음악방송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고통스러운 그 기억이 떠올라 듣지 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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