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진정한 다문화 가정 <비지터>
2012-11-07
글 : 윤혜지

아내를 여의고 20년을 무료하게 살아온 월터 베일(리처드 젠킨스) 교수는 학회 참석차 뉴욕에 간다. 월터가 없는 동안 뉴욕에 있는 그의 아파트엔 불법 이민자 타렉(하즈 슬레이맨)과 자이납(다네이 거리라)이 들어와 살고 있다. 월터는 오갈 데 없는 그들을 아파트에 잠시 머물게 해주고, 타렉은 보답으로 월터에게 젬베 연주를 가르쳐준다. 밝고 경쾌한 젬베 소리는 오랫동안 굳어 있던 월터의 삶에 활기와 리듬을 되찾아준다. 월터와 타렉, 자이납이 가족이 되어갈 무렵 타렉이 단속에 걸려 불법 이민자 수용소에 수감되고, 월터는 타렉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월터의 마른 일상을 깨운 것은 젬베가 불러오는 낯선 리듬과 생의 활력이다. 있으나 마나 한 자유의 여신상 따위보다도 곁에서 살을 부비고 지내며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월터에게는 필요했다. 미국인인 월터, 시리아인인 타렉, 세네갈인인 자이납은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며 인간적인 유대를 맺는다. 점차 이들은 국경과 이념을 초월해 서로에게 스며들며 진정한 다문화 가정을 이루어간다. 특히 공원에서 한바탕 연주를 나누는 월터와 타렉의 모습은 눈물겹게 따뜻하다. 하지만 ‘미국의 힘은 이민자들로부터’라는 문구가 수용소 안에 떡하니 붙어 있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이민자를 대하는 미국 정부의 대처는 모순적이다. 누구보다 타인의 사정에 무관심했던 월터가 타렉을 위해 수용소에서 화내고 울부짖는 순간은 그래서 유의미하다. 비극적인 현실과 맞서는 데에 진심만으로는 역부족이지만 슬픔으로 꽉 찬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는 충분하다. 리처드 젠킨스는 이 영화로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제30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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