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유족을 위로하는 여자의 말에는 자신감이 없다. 그녀는 사실 자신의 죄의식을 위로하는 중이다. <괜찮아, 울지마> <포도나무를 베어라> 등을 연출한 민병훈 감독의 신작인 <터치>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수렁에 빠져 있다. 어쩌면 그들의 문제는 자신이 저지르는 짓이 죄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데에서 기인할지 모른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터치>는 이들을 더 깊은 절망에 빠뜨린 뒤, 다시 건져올리는 이야기다.
국가대표 사격선수였지만 현재는 알코올 중독자인 남자 동식(유준상)은 중학교 사격팀의 코치로 일하고 있다.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모를 둔 학생과의 갈등으로 그는 실업 위기에 처한다. 동식의 아내인 수원(김지영)은 간병인이다. 그녀는 자신이 돌보는 시한부 환자에게 불법 약품을 판매하거나, 뒷거래를 통해 자식들이 버린 노인들을 무료요양시설에 보내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어느 날 한동안 끊었던 술을 다시 마셔야 했던 동식은 음주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다. 남편의 합의금을 구하러 다니던 수원은 간병인으로 돌보던 노인환자의 성적인 요구를 들어준다. 다시 안정을 찾으려 할 때쯤, 이들에게는 또 한번의 갈등이 찾아온다. 지난 사고의 후유증을 잊으려 할 때 찾아온 이 사건은 그들을 죄의식의 밑바닥으로 빠뜨린다.
<벌이 날다>부터 <포도나무를 베어라>까지를 ‘두려움에 관한 3부작’으로 명명했던 민병훈 감독은 <터치>를 ‘생명에 관한 1부’라 말한다. 하지만 물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던 <벌이 날다>의 가난한 교사와 거짓말을 반복하던 <괜찮아, 울지마>의 남자처럼, <터치>의 부부 또한 내면에서 어둠을 파낸다. 다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변했다. <터치>가 묘사하는 세상에서 생명이란 돈 거래의 대상이다. 혹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방치되고 있는 가치다. 동식과 수원은 누군가의 생명 앞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딜레마에 놓인다. 그를 살릴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그러나 이미 저지른 죄가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영화는 그럼에도 꺼져가는 생명을 지키려 할 때,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역설한다. 용서와 화해, 구원의 이야기인 한편 불편한 진실이 공존하지만, <터치>가 그저 심각한 사회드라마인 건 아니다. 민병훈 감독 자신이 “관객과 사회와의 소통을 먼저 고민했다”는 <터치>는 전작들과 달리 강한 드라마가 쉴 틈 없이 빠르게 흐르고, 장면마다의 긴장감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그의 전작보다 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조연을 주로 연기했던 배우 김지영의 스산한 표정도 눈에 맺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