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에 관한 진실 혹은 대담. 그는 첫눈에 따사로움을 풍기진 않는다. 깎은 듯 균형잡힌 얼굴은 차갑고 도회적인 디지털의 느낌이 앞선다. 스크린도 그런 이미지를 고착시켰고, 처음 얼굴을 알린 <정사>에서 약혼자를 언니에게 뺏기는 지현, 낯선 도시 서울에서 ‘나’를 사랑했지만 떠나가는 <구멍>의 선영, TV드라마 <초대>의 자유분방한 연애관을 갖고 있는 미연에 이르기까지 그 이미지는 일관된다. 그런 면에서 지금 촬영중인 <울랄라 씨스터즈>는 김민에게 ‘전복적인’ 영화다. 라라클럽을 인수하려는 라이벌 네모클럽의 비열한 음모에 맞서는 네 여자의 활약과 그들이 펼치는 화려한 춤과 노래가 곁들여질 코미디 <울랄라 씨스터즈>에서 그는 음치인 가수 지망생 혜영으로 등장, 차갑고 꽉 조여진 역할을 벗고 망가지고 풀린 모습을 선보인다. 혜영의 헤어스타일이라며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긴 웨이브 파마를 하고 스튜디오에 나타난 김민에게선 이제야 현실의 누추한 따사로움이 풍겨난다.
‘울랄라 씨스터’ 혜영을 승낙하면서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망가지자 생각했다. 바꾼 것은 헤어스타일만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무너지자” 결심했고, 우아하게 입술에 갖다대던 소주잔도 이젠 우왁스럽게 꺾어서 기울이고, 파마 머리가 헝클어져도 ‘뭐 어때’ 하게 됐다. “팬티 차림으로도 촬영할 거예요. 삼각이냐 사각이냐를 두고 입씨름중이에요.” <울랄라 씨스터즈> 대본을 받고 이틀 만에 하겠다고 나섰지만, 코믹 연기는 처음이라 촬영 때도 늘 오버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나 여자 넷이 어우러지고 춤이라는 볼거리로 승부하는 영화라 다행이라고. 맏언니격인 이미숙, 김원희, 신인 김현수까지 여자 넷이 모이니 새벽 6시까지 수다를 떠는 단단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몸을 이렇게 많이 쓰는 영화는 처음”이라고 말할 만큼 춤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4개월 전부터 춤연습을 하고 있다. 힙합, 재즈, 라틴, 디스코, 탱고, 로큰롤에서 막춤까지 7가지 종류의 춤을 선보일 예정. 촬영이 시작된 뒤에도 일주일에 3일쯤은 밤에서 새벽까지 연습을 한다. 몸을 쓰는 일은 하나 더 있다. 바로 레슬링. 네 여자가 궁여지책으로 레슬링 상대역 대타로 나섰다가 패싸움으로 번지는 신이 있어 레슬링도 배웠다. 풍차돌리기, 크로스오버 등 레슬링 용어도 이젠 술술 읊는다.
초등학교 때 이민가서 미국에서 대학까지 다닌 그는, 대학에서 연극수업을 듣다가 연기에의 욕망을 알아차렸지만 할리우드엔 동양인이 꿈꿀 수 있는 배역이 거의 없었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있던 동양인 비율은 0.2% 정도. 칼날만큼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보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의 확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한국행을 결심했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니 기회가 되면 할리우드를 꿈꿀 수 있겠다, 했더니 “기회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홈그라운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내 자리, 내 위치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아직 내 자리가 없잖아요.” 그러면서 <엑시덴탈 스파이>를 찍을 때 성룡이 해줬다는 한마디를 들려준다. “찾아가지 마라. 그들이 네게 오게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