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은 과거 <펜트하우스 코끼리> <슈퍼스타> 등에 카메오로 나온 적이 있다. “단합도 잘되고 소통도 잘되는” 촬영장을 훔쳐보면서 그녀는 “영화배우들이 부러웠다”. 그들과 함께하면 “집중력있는 연기를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배우를 꿈꿨으나 가수를 해야했고, 연기로 선회했으나 영화를 꿈꿨던 박수진에게 <수목장>은 ‘TV’영화가 아니라 TV‘영화’다. 5년 주기로 행로를 바꾸었던 박수진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인터뷰 일정 잡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 때문이라고 들었다.
=이번 학기에 복학했다. 마지막 학기다. ‘슈가’ 활동하느라 대학도 남들보다 2년 늦게 갔는데 3학년까지 다니고 3년을 휴학했다. 이전엔 학교 가면 교수님께 인사만 드리고 수업을 리포트로 대체했는데 이번엔 학교생활에만 집중하고 있다. 학생회관 식당에 가서 밥도 먹고. 그런데 졸업하려면 1년을 더 다녀야 한다. 학점이 모자라서. 졸업하려면 멀었다. (웃음)
-<수목장>이 극장에서 상영되면서 본의 아니게 영화 데뷔작이 됐다.
=찍을 때부터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고 만든 드라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개봉할 줄 몰랐다. 얼떨떨하다. 아주 큰 스크린에서 본 적이 없으니까 기대도 되고 떨리기도 하고. 시사회 때 정말 보고 싶었는데 인터뷰 때문에 아직 못 봤다.
-대본이라고 불러야 하나. 시나리오라고 불러야 하나. 지효라는 인물에 끌렸던 이유가 궁금하다.
=박광춘 감독님의 신념에 따르면 시나리오였다. (웃음) 감독님은 한번도 <수목장>을 드라마라고 생각하신 적이 없다. 일단 시나리오가 자극적이라 맘에 들었다. 지효 역시 극단적인 인물이어서 끌렸다. 악역은 드라마에서도 많이 해봤지만 대부분 얄미운 철부지 악역이었다. 그에 비해 지효는 원하는 사랑을 얻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인물이다.
-지효는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의 중심에 선다. 복잡한 감정들을 한꺼번에 내보여야 하는 장면들도 많다.
=드라마는 조금 더 보여줘야 하고 영화는 조금 덜 보여줘야 한다고들 하신다. 그런데 감정은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 표현은 절제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적절한 감정의 수위들은 테이크를 거듭하면서 찾으려고 했다. 다만 욕심을 끝까지 부리지 못한 건 아쉽다. 시간이 좀더 주어졌다면 더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보름 안에 다 찍어야 했다.
-가수 활동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면 어땠을 것 같나.
=쟁쟁한 후배들 옆에서 엄청 긴장하면서 무대에 서고 있겠지.
-반대로 배우의 길을 쭉 걸어왔다면.
=‘슈가’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되긴 했어도 꼬리표처럼 달라붙은 적이 더 많았다. 드라마에 나오면 다들 극중 인물이 아니라 ‘슈가’의 수진으로 보셨다. 그런 시선 때문에 비슷한 경력의 신인배우들보다 연기에 몰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연기를 했다면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겠지.
-연기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하는 이들은 없었나.
=일단 멤버들한테 가장 미안했다. 결과적으로도 내가 빠지면서 팀이 해체됐다. 한편으론 고마운 마음도 있다. 난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좋은 기회를 만나서 가수를 하게 됐는데 그래도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털어놨을 때 멤버들이 모두 이해해줬다. 연기도 마찬가지겠지만, 음악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연예인이 되고 싶고 인기를 얻고 싶으면, 금방 바닥이 보인다. 나는 음악에 애착이 있어서 가수가 된 경우도 아니다. 그래서 활동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슈가’를 시작할 때만 해도 대부분 립싱크여서 무대에 설 때 전혀 부담이 없었다. 그러다 점점 라이브 시대가 된 거다. 실력이 중요해지는 거지. 내가 라이브 무대에서 한번 실수하면 팀 이미지까지 다 깎인다. 5년 동안 ‘슈가’ 활동하면서 신경성 장염과 두통을 달고 살았다. 멤버들이 내 뜻을 받아준 것도 그런 모습을 많이 봐서였을 것이다.
-‘슈가’ 멤버였던 황정음이 <지붕 뚫고 하이킥!>(2009)으로 떴을 때 기분이 어땠나.
=많이들 물어보신다. 그런데 나 질투 같은 거 없다. 정음 언니랑은 같이 5년을 살았고, 지금도 친자매처럼 지낸다. 다른 사람보다 언니가 잘되는 게 훨씬 더 낫지 않나. 언니가 잘돼야 내가 덕을 더 많이 볼 수 있고. (웃음) 실제로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먹었다.
-드라마 출연작 중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은 뭔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넝쿨째 굴러온 당신>인가.
=<드라마 스페셜-큐피드 팩토리>다. 시청률도 가장 안 나오고, 촬영도 1주일만 했고, 딱 한번 방영되는 단막극이었다. 조건은 안 좋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다. 가끔 내가 불렀던 O.S.T를 들으면서 극중 인물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상상할 때도 있다. 캐릭터가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았던 적은 없었다. 그때 연출자가 김형석 PD님이었는데, 그 인연으로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중간 투입됐다. 폐 끼치는 것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다. 시청률이 20%만 돼도 모르겠는데 이미 40%대였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도 있다. 욕을 좀 먹더라도 수지가 사건을 좀 벌였으면 어떨까 했다. 그런데 한회, 두회 나가고 나서 게시판 반응이 너무 안 좋았다. 불륜 아니냐 그러시니까. (웃음) 워낙 편안한 가족드라마여서 결국 귀여운 캐릭터에 머물렀다. 그래도 (유)준상이 오빠나 (김)남주 언니가 정말 잘 챙겨주셨다. 준상이 오빠는 내 캐릭터를 살려주려고 선생님처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대본 같이 봐주시면서 ‘이 부분에서는 한번 쓰러져볼까’, 뭐 이런 식으로 코치도 해주시고.
-연기자로서 5년을 살아왔다. 앞으로 5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나.
=일단 서른 전에 학교를 졸업해야한다. (웃음) 서른 넘기면 졸업 못할 것 같다. 연습실에서 대본 읽는 것보다 촬영장에서 상대 배우와 눈 한번 맞추는 것이 더 좋은 공부라는 걸 이미 안다. 일단 많이 부딪쳐보고 싶다. 영화는 로맨틱코미디를 해보고 싶다. 내가 개그 본능이 좀 있다. 누굴 웃기면 뿌듯하다. 호러물도 다시 해보고 싶다. <수목장>의 지효와 달리 두려움을 느끼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