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라스트 캐슬>의 로버트 레드퍼드
2002-01-30
글 : 최수임

“우리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지?” “꽤 됐지.” “언제 그들이 나타날까?” “이제 곧.”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부치 캐시디와 선문답을 하는 선댄스 키드의 쿨한 유머와 낙천적 미소를, 한창때 레드퍼드의 ‘잘생긴’ 얼굴과 빛나는 금발로부터 떼어놓을 순 없을 것이다. <스팅> <추억> <위대한 개츠비>의 아름다운 골든보이였던 로버트 레드퍼드가 올해로 65살이다. 이제는 단지 영화배우라기보다는 감독 겸 제작자로, 파크 시티의 선댄스 인스티튜트와 선댄스영화제의 설립자로, 유타주에 자신의 ‘타운’을 가꾼 영화인으로 소개되는 게 더 적절할 그의 삶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유명하다. 자신의 땅을 일구는 사람. 일구어 거기 다른 사람들을 더불어 살게 하는 사람. 레드퍼드에게서 묻어나는 흙냄새는, <흐르는 강물처럼>의 플라잉 낚싯줄과 <베가번스의 전설>의 푸른 잔디만큼이나 우아하다. 가끔 <호스 위스퍼러>에서처럼 명백한 자기도취에 빠져드는 때도 있지만, 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 보아도, 우디 앨런이 사랑하는 뉴욕의 공기만큼이나 세련된 그만의 향취가 있다. 그건 어쩌면 LP판을 틀어야만 들을 수 있는 클래식한 음감과 비슷한 것이다.

<라스트 캐슬>에서 군 형무소를 자신의 ‘성’으로 끌어안고 ‘부하’들을 다독이는 장군 어윈은, 레드퍼드 자신에게는 물론 그를 예전부터 알아왔던 팬들에게도 낯선 캐릭터다. 그는 예부터 ‘삐딱이’였다. 벽 속의 구멍 갱단의 일원 선댄스 키드는 말할 것도 없고, 닉슨 정부의 워터게이트를 캐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 역시. “어윈은 내 삶의 경험과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스크린 안에서건 밖에서건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이 나라의 정치 시스템에 비판적인 사람이었고, 그래서 어윈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내게는 호기심나는 일이었다”라고 그는 말한다. “용기, 충성심, 헌신, 명예 이런 모든 단어들”이 우스꽝스러웠던 지난해 촬영을 시작해 그것들이 “더이상 우스꽝스러운 게 아닌 게 되”어버린 시점인 10월 중순 미국 내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레드퍼드의 필모그래피에서 여하튼 독특한 것이다. 볼리비아의 은행털이범, 초원의 조마사에서 난데없이 삼성장군이라니.

1937년 샌타모니카생 찰스 로버트 레드퍼드 주니어는 한마디로 산만한 아이였다. 고등학교 때는 자동차 휠캡을 종종 훔쳤고 야구 특기생으로 들어간 콜로라도대학에서는 음주문제로 장학생 자격을 박탈당했다. 1년간 석유노동자로 일한 뒤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를 다닌 그는 얼마간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지냈고, 배우 수업은 다시 미국에 돌아와 뉴욕의 드라마예술아카데미를 다니며 비로소 시작했다. <톨 스토리>라는 작은 브로드웨이 연극(1959)이 그의 첫 무대였다. 몇편의 연극과 TV드라마를 계속하다 1962년 드니스 샌더스 감독의 반전영화 <워 헌트>로 영화 데뷔.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추억> <대통령의 사람들>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 이후 그의 출연작들은 말 그대로 ‘주옥같은 명작’들이 되었다. 1980년 그는 <보통사람들>을 직접 연출하고 오스카 감독상을 따내며 성공적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퀴즈 쇼> <호스 위스퍼러> <베가번스의 전설> 등 대체로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은 그의 연출작들은 그다운 색채를 갖춘 채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 못지않은 자취를 남기고 있다.

<라스트 캐슬>에서 로버트 레드퍼드의 모습은 조금은 늙었고 조금은 초라하다. 부드럽고도 단호하게 상처입은 말의 영혼을 어루만지던 <호스 위스퍼러>에서 조마사 톰의 단단한 근육은, 형무소의 노역을 하는 어윈의 벗은 상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초원의 블루진 대신 걸친 죄수복은 그의 세월 묻은 육체를 더더욱 도드라져보이게 한다. 하지만 그는 늙어‘버린’ 게 아니라, 그저 늙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시간을 잘 길들여놓았고, 그래서 그 속에 아직도 선댄스 키드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라스트 캐슬>에 이어 3월에는, 레드퍼드가 은퇴를 하루 앞둔 CIA 요원으로 분하는 토니 스콧 감독의 <스파이 게임>이 국내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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