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의 추억: 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이하 <유신의 추억>)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비추는 몽타주로 시작한다. 도시는 발전했고, 그 속의 사람들은 바쁘다. 스크린 밖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은 이제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었던 올해 개봉한 다큐멘터리들처럼 <유신의 추억>도 그들이 잊고 있던 사실을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두 개의 문>은 용산의 그날을 목격하게 했고, <MB의 추억>은 5년 전 이맘때의 이야기를 통해 우스운 선택을 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유신의 추억>은 그보다 먼 과거에 관한 이야기다.
1972년 10월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치체제를 개혁한다”고 선언했다. 선언과 함께 국회가 해산됐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됐으며 다음달에는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약 90%에 달하는 투표율에 역시 90%가 찬성한 이 투표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한다. <유신의 추억>은 이 시절, 유신정권이 자행한 초헌법적인 폭력들을 열거한다. 가혹한 고문으로 조작된 증거에 의해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들은 재판이 종료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형을 당했고, 박정희 정권에 맞섰던 장준하는 의문의 사고로 사망했다. 과거와 현재를 함께 조망하는 <유신의 추억>은 과연 그 시절을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는지 묻는다.
과거를 다루는 이상, <유신의 추억>이 발로 뛰며 찾아야 했던 건 당시의 기록이었을 것이다. 자료영상과 사진,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한 영화는 그때의 사건들을 연대기 순으로 조명한다. 백기완, 서중석, 유인태, 이철 등이 털어놓는 고통의 기억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들린다. 하지만 <유신의 추억>이 단지 교육용 다큐멘터리 방식으로만 일관하는 건 아니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관객을 안내하는 건 연극연출가이자 소리꾼인 임진택의 판소리다. 서대문형무소의 뜰에 선 임진택은 유신시대의 사건들과 그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를 판소리로 해석해 부른다. 광복군과 일본군으로, 민주화운동과 독재정치로,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박정희와 장준하의 인생을 비교하는 대목은 그중에서도 귀가 솔깃해지는 대목이다. 당시 형무소로 끌려간 사람들의 모습을 현재의 증언과 재연으로 교차하는 부분도 눈에 띄는 장면이다. <두 개의 문> 같은 형식적인 시도와 <MB의 추억>처럼 기가 차는 유머는 없지만, 그때를 기억하자는 목표로 달려가는 힘은 상당하다. 무엇보다 <유신의 추억>이 용산참사와 언론탄압 등 지금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신의 추억>이 드러내는 과거는 자칫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는 거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