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희망이 사라졌을 때 누군가를 만나 특별한 순간을 보낸다면 다시 희망을 얻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떠나야 할 시간>과 <생수>로 구성된 옴니버스영화 <사이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작품이다. <떠나야 할 시간>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두 남녀에 관한 드라마다. 여자(황수정)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고, 남자(기태영)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감옥으로 이송되던 중이었다. 호송차가 사고를 당하면서 남자는 극적으로 탈출하고, 우연히 여행 중이던 여자를 만나게 된다. 죄책감과 절망 속에서 삶을 살아가던 남자는 여자와의 여행을 통해 위안과 희망을 얻기 시작한다. <생수>는 바닷가 절벽 위에서 자살하려는 남자 송장수(박철민)를 주인공으로 하는 블랙코미디다.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기 직전, 그는 물을 마시고 싶어 근처에 있는 다방에 커피를 주문한다. 당연하게도 생수가 함께 올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다방 종업원(천우희)은 달랑 커피만 가져왔고, 실망한 송장수는 생수를 다시 가져오라고 그녀를 돌려보낸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생수는 오지 않고, 참다 못한 그는 뛰어내리다 말고 다방 종업원을 찾기 위해 마을로 내려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편 모두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사건을 장황하게 벌여놨지만 각 사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영화 속 인물들은 ‘절망 속에서 만난 인연 때문에 한줄기 희망을 발견하다’라는 영화의 주제에 따라 현학적인 대사만 내뱉을 뿐이다.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떠나야 할 시간>). 그러다보니 영화 속 인물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하고, 그런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가 안쓰러울 뿐이다(<생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