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그들의 발과 엉덩이에 찬사를!
2012-11-26
글 : 문석

웹툰은 지금 한국 대중문화의 최전선에 서 있는 장르다. 소재나 주제, 장르와 형식 면에서 다종다양한 웹툰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상상력이 다 모여 있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머천다이징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웹툰을 한국 크리에이티브의 젖줄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만화잡지 시장의 사멸과 포털 사이트의 경쟁 속에서 탄생한 웹툰은 이제 정착 단계를 넘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분위기다. 물론 언제까지 포털에서 웹툰을 공짜로 제공(일부는 유료긴 하지만)할지는 알 수 없지만 웹툰 독자 입장에서는 이토록 풍성한 콘텐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웹툰을 광 스크롤로 후다닥 볼지라도 이를 만드는 작가들은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다. 윤태호와 함께 웹툰계에서 ‘거장’으로 꼽히는 강풀은 <26년> 후기에서 허영만 화백과 이두호 화백의 만화론을 인용한 적이 있다. 허영만 화백은 “만화는 발로 그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 말을 따라 광주를 방문하기도 했고 여러 관계자를 인터뷰했으며, 동료 만화가와 만화학원생, 심지어 어머니까지 모델로 세워서 여러 장면을 그렸다. 또 이두호 화백은 “만화는 엉덩이로 그리는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그 또한 “(만화책으로 환산했을 때) 100여 페이지가 넘는 한회 분량”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 장면 한 장면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이번 특집기사를 통해 소개하는 웹툰 작가 8명 또한 마찬가지일 터. 그들의 열정과 끈기에, 그들의 고달픈 발과 눅눅해진 엉덩이에 박수를 보낸다.

‘내 인생의 웹툰’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26년>을 택할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역사의식과 번쩍이는 현실감각, 여기에 날렵한 장르적 색채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말이다. 강풀의 ‘종스크롤 미학’ 또한 <26년>을 통해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마지막 화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기다리던 몇주를 생각하면 당시의 초조와 불안, 배신감과 걱정이 울컥 치밀어오른다. 그리고 이 길고 긴 마지막 이야기를 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영화 <26년>을 기다리는 심정도 비슷하다. 너무도 영화적이어서 외려 영화로 옮기기 까다롭다는 강풀의 이 걸작이 어떻게 스크린 위에 펼쳐질지 기대도 되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도 든다. 게다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작자가 겪어야 했던 고난을 생각하면 애간장이 탈 정도다(불행히도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26년> 기자시사회가 열리고 있다. ㅠㅠ). 역사에 대한 기억과 현실 변화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는 시기이기에 더욱 이 영화가 기다려지는지 모르겠다. 또 한편의 훌륭한 웹툰 원작 영화가 탄생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강병진 기자가 <씨네21>을 떠난다. 성실함 못지않게 반짝이는 감각을 갖췄던, 그러니까 튼튼한 발과 엉덩이를 가진 후배였기에 보내는 마음이 편치 않지만, 직장을 옮겨서도 좋은 글을 쓸 것이라 의심치 않기에 그의 앞날을 축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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