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지금은 기대할 수 없는 판타지니까
2012-12-07
글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서칭 포 슈가맨>

시골 살 때 서울에서 여자애가 전학 왔다. 자갈 깔린 마당을 코스모스로 두른 2층 양옥집에 살던 걔는 ‘도시 여자’답게 촌뜨기들과 말도 섞지 않았다. 기억하는 건 검은 자가용을 타고 학교에 오고 집에 가던 실루엣뿐. 소문이 돌았다. 아버지가 정부 일 하는 무서운 군인이래, 집안에서 정한 약혼자가 있대. 코찔찔이 나는 코스모스나 뜯으며 정체불명의 여자애가 궁금했다. 하긴 무슨 상관이람. 어른이 된 그녀는 어디서 소고기나 사 묵고 있겠지.

<서칭 포 슈가맨>은 소문에 대한 이야기다. 남아공을 뒤흔든 정체불명의 뮤지션을 추적하는 여정이 탐정영화처럼 펼쳐진다. 결론은 어쨌든 해피엔딩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모든 과정이다. 그의 앨범은 실패했지만 성공했다. 그는 죽었지만 살았다. 이 모순이 영화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한편 그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팝 산업의 유년기’에나 가능했을 것이기도 하다. 유튜브와 대자본이 음악 산업을 좌우하는 21세기에는 아예 기대할 수 없는 판타지. 그래서 <Sugar Man>과 <I Wonder>를 강추한다. 소문과 실제, 실패와 성공, 죽음과 생명,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와 모순을 하나로 이어주는 곡이다. 물론 다른 곡들도 좋다. 그러니 소고기 사 묵지 말고 CD를.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