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안화는 여전히 홍콩 영화인들에게 아낌없는 존경을 받는 현재진행형의 이름이다. <심플 라이프> 역시 그가 <객도추한>(1990), <여인사십>(1995), <이모의 포스트모던 라이프>(2006), <천수위의 낮과 밤>(2008) 등을 통해 줄곧 다뤄왔던 여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가슴 훈훈한 애정과 홍콩의 현실이라는 냉정 사이에서 허안화는 평생 가정부로 살았던 아타오(엽덕한)의 일생을 통해 죽음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변함없이 완숙한 대가의 풍모를 풍기는 ‘홍콩영화의 대모’ 허안화와 서면 인터뷰를 나눴다.
-엽덕한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언제나 좋은 여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로저 리(영화제작자)에게서 <심플 라이프>의 스토리를 들었을 때, 아타오 역으로 엽덕한 외의 다른 배우를 떠올릴 수 없었다. 또 이미 60대 중반을 넘긴 그녀나 나에게 영화 속 아타오의 상황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 엽덕한과 유덕화의 모습이 겹쳐졌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두 사람의 관계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기에 캐스팅이 중요했다.
-<보트 피플>(1982), <극도추종>(1991) 등 유덕화와 여러 작품을 했다. 그를 다시 <심플 라이프>로 만난 느낌은 어떤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영화 <보트 피플>에서였다. 주윤발이 그를 나에게 추천했다. 주윤발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차하면서 유덕화를 소개해준 것이다. 당시 유덕화는 신인임에도 연기를 무척 잘했다. 내가 늘 얘기하는 것이지만, 연기가 외모에 가려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웃음)
-<심플 라이프>는 홍콩의 노인문제, 가족문제 등 여러 현실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죽음’이라는 화두가 있다.
=늙는다는 것, 가족의 해체 등은 이제 홍콩과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급격하게 겪고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섣부르게 함께 살아가는 법,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당신도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점들이 영화에 반영된 게 있나.
=내가 노모와 함께 살면서 느낀 감정들을 영화에 투영하기는 했다. 그리고 주인과 하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끌렸었는데, 그 이유는 현대사회에는 이러한 관계가 거의 멸종하다시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어머니가 늙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늙어간다는 것’은 항상 내가 마주하고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서 많은 감정들을 느꼈고, 동시에 나도 나이를 먹고 있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를 어머니를 보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삶과 가장 가까운 이야기이고, 그렇기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내 삶에 대한 감정이 영화에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천수위의 낮과 밤>과 <천수위의 밤과 안개>(2009) 등 최근작들에서 홍콩의 현재를 무척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당신의 작업방식이나 스타일이 최근 들어 변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할까? (웃음) 내가 정확히 원하는 어떤 굉장한 아이디어가 항상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를 만나면 알게 될 것이다. 이제는 모든 걸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는다. 촬영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발견하는 자유를 더 만끽하는 편이다. 이제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영화에서 유덕화, 서극, 홍금보는 자기네끼리 연기를 하여 중국 본토 투자자의 돈을 끌어온다. 그만큼 중국 본토와 홍콩의 합작과 투자는 이제 일상적인 것이 됐다.
=<심플 라이프> 역시 중국시장을 생각하지 않고는 만들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홍콩보다 더 큰 프리미어를 갖기도 했는데, 이제는 중국 본토와의 합작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보다 중국시장과 관객이 흥미를 느낄 만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점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행복하게 만드는 영화라면 중국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 영화의 변함없는 테마는 역시 홍콩이다. 홍콩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현재 홍콩은 출생 비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 노령인구는 증가하고 말이다. 사회적으로 문제이지만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큰 관심이 없다. 내가 홍콩의 미래상을 계속 담아내는 것은 이같은 문제점을 알리고자 하는 것과 홍콩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다. 홍콩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