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국영화 관객이 1억명을 돌파했다. 하루 평균 20만 관객이 극장을 찾았고, 1천만명이 넘는 흥행 영화가 두편이나 개봉했다.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고, 독립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 영화계가 제작과 흥행 면에서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시점에서 <영화판>은 한국 영화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시작부터 논점이 확실하다. <영화판>은 ‘영화계’라는 격식있는 언어 대신 ‘영화판’이라는 비속어를 들고나온다. 산업적으로 모양새를 갖춘 한국 영화시장에서 영화인들을 향해 ‘영화판’이라고 쓴다는 건 분명 실례가 되는 용어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지금의 한국 영화계의 이면에 숨어 있는 비합리적인 모순을 지적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더군다나 한국영화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는 출연자들이 ‘판’이란 용어를 거침없이 쓸 수 있을 만큼 한국 영화계에 깊숙이 몸담은 영화인들이란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정지영 감독과 배우 윤진서가 인터뷰어로 나서고, 그들이 찾은 인터뷰이로 임권택, 이장호, 장선우, 이창동, 임상수, 박찬욱,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안성기, 박중훈, 강수연, 최민식, 김혜수, 제작자, 평론가 등 다양한 영화인이 등장한다. 이른바 내부자들의 고발인 셈이다.
“젖꼭지 정도는 나와야 격정멜로라는 말을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는 여배우 윤진서의 속내에서부터 배우들이 타고 다니는 밴을 두고 “마치 UFO 같다”며 “외계인이 같은 사람이 아니듯, 배우와 스탭들도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이창동 감독의 쓴소리, “<칠수와 만수> 광고문구가 ‘완전 동시녹음’이었다”는 배우 박중훈의 우스갯소리는 발전된 영화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영화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은 노장 감독의 현실을 절감해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정지영 감독은 “자본이 권력이라면, 지금은 그 권력과 만나는 지점이 더 멀어졌다”며 영화계의 현실을 토로한다. <영화판>은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온 허철 감독이 2009년 하반기부터 2012년 겨울까지 100여명의 영화인을 만나 촬영한 200시간의 영상을 압축한 결과물이다. 총 여섯개의 시퀀스로 나뉘며 여배우, 여성감독, 스탭 처우, 군부독재와 검열, 직배 반대, 스크린쿼터 운동, 거대자본의 영화계 잠식 등이 총망라된다. 허심탄회한 개탄의 소리는 술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담 자리에서, 아예 인터뷰만 따로 진행하는 등 다양하게 진행된다. 방송과 지면매체에서 늘 다루는 주제라 별반 새로울 것은 없지만 영화인들이 가속이 붙은 영화계에 ‘찬물’을 한번 끼얹고 환기한다는 점에서, 가볍게 하는 소리 같지만 제법 쓴소리가 가득하다는 점에서 돌아볼 만하다. 인터뷰어가 정지영 감독이라 동원 가능했을 화려한 출연 리스트들은 이 작품의 개봉이 현실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추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