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마린>
2012-12-05
글 : 송경원

10살 때 부모를 잃고 입양된 마린(마리 디나노드)은 언니 리사(멜라니 로랑)와 사랑스런 조카 레오와 함께 불만없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린은 자신이 일하는 서점으로 찾아온 알렉스(데니스 메노쳇)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불만을 품은 리사는 알렉스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마린은 진정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잠시 알렉스를 멀리하려고도 해보지만 결국 그를 거부할 수 없음을 깨닫는 마린. 그러나 얼마 뒤 마린은 퇴근길에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남겨진 사람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그녀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린다.

“누구나 어릴 땐 꿈이 있다. 어릴 적 꿈과 현실은 다르다. 그래도 잘 지낸다. 하루하루 우린 살아간다. 서로 의지하면서.” <마린>은 지금 이 순간 내 옆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온기를 기억하도록 만드는 영화다. 프랑스의 떠오르는 여배우 멜라니 로랑은 직접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에서 주연과 감독까지 도맡으며 인상적인 첫 장편 데뷔를 치러냈다. 사건의 연쇄보다는 거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표정, 이를테면 먹먹함, 설렘, 혼란스러움 같은 감정의 풍경들을 찬찬히 관찰하는 <마린>은 종종 이야기를 덜어내고, 화면을 비우며, 사건을 생략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 장면, 매 순간 격렬하게 일렁이는 정념들을 읽어낼 수 있는데 이는 주연배우인 마리 디나노드, 멜라니 로랑, 데니스 메노쳇의 진심어린 연기와 더불어 멜라니 로랑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에 힘입은 바 크다. 멜라니 로랑은 서사와 사건을 따라가는 대신 그에 반응하는 감정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내기 위해 애쓴다. 특히 화면과 음악의 섬세한 배치가 인상적이다.

빈자리에 남아 있는 온기의 공유를 통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을 채워나가는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햇살 같은 따스함 아래에 있다. 사건과 설명의 빈자리에 들어차 있는 건 다름 아닌 풍성한 음악이다. 사건과 상황의 설명은 최소화하는 반면 그에 대한 각 인물들의 반응과 감정을 좀더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어 쓸쓸한 상실의 순간마저 마치 따뜻한 목욕물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포근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오프닝의 기타 퉁기는 소리는 멜라니 로랑의 독백과 함께 낮게 깔리며 부드러운 위로의 손길을 전하고, 마린과 알렉스의 사랑은 피아노, 바이올린의 앙상블과 결합하며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한 이미지를 피워내는 식이다. 상실감보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기억과 위안으로 채워져 있는 <마린>은 원제(Les Adopte′s, 입양)의 의미처럼 상처의 공유를 통해 가족이 되어가고 가족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리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환기시킨다. 멜라니 로랑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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