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 감독의 영화 <백야> 속 한 장면처럼 첫눈이 조용히 내리던 11월13일 저녁, CGV 무비꼴라쥬와 <씨네21>이 함께하는 <백야>의 시네마톡이 CGV대학로에서 열렸다. 이날 시네마톡에는 <씨네21> 이화정 기자, 이송희일 감독을 비롯해 <백야>의 두 주인공 배우 원태희, 이이경이 참석해 그 어느 때보다 열띤 관객의 환호를 받았다. <백야>는 <지난여름, 갑자기> <남쪽으로 간다>와 함께 개봉한 이송희일 감독의 퀴어 연작 시리즈 중 하나다. 영화는 원 나이트 스탠드를 위해 만난 두 남자 원규(원태희)와 태준(이이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해외로 떠났다가 2년 만에 한국 땅에 발을 내딛은 승무원 원규와 퀵서비스맨으로 일하는 태준은 함께 종로 일대 밤거리를 달리고 산책하며 예상치 못한 하룻밤을 보낸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마음에 빗장을 건 원규와 원규의 마음의 빗장을 풀려는 태준의 하룻밤은 추운 겨울밤, 눈이 내리기 직전의 느낌처럼 차갑고 습하다.
<백야>는 2009년 종로에서 한 동성애자가 묻지마 폭행을 당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2009년 발생한 종로 묻지마 폭행은 한국에서 처음 발생한 동성애에 대한 증오 범죄였기에 더욱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해당 사건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두 남자가 함께 하룻밤 동안 산책하며 나누는 감정이 작품 전체를 감싸안는다. <씨네21> 이화정 기자는 “실제 사건이 있었고 거기에서 작품이 출발했기 때문에 작품에 무거운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론 참 아름다운 멜로”라며 <백야>에 대해 평했다. 이에 이송희일 감독은 “작품에서 그 사건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 사건은 서브 플롯으로 배치했다. 예전에 내가 ‘산책을 동반하지 않은 원 나이트 스탠드는 추하다’란 이야기를 썼다. 영화를 찍기 전 원 나이트 스탠드에 관련된 영화들을 많이 찾아봤다. 그리고 6년간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내 개인적인 경험이 영화에 많이 스며들었다”고 답했다.
이날 이송희일 감독은 퀴어영화이기 때문에 3개월 동안 캐스팅을 못했던 속사정에 대해 말했다. “<백야>는 배우 부모님의 반대로 캐스팅이 무산되는 경우를 수차례 반복해서 겪어야 했다. 그래서 이이경과 미팅할 때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이 있냐고부터 물어봤다.” 이송희일 감독의 캐스팅 비화에 대해 들은 이이경 역시 <백야>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는 “감독님이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겠냐고 물으셔서 할 수 있다고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촬영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시나리오 봤는데 설마 지금 찍는 게 이거냐고 묻더라. 그래서 어머니한테 군대도 다녀왔고 나도 이제 성인이니 내 선택을 믿어달라고 부탁드렸다. 다만 아버지께는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며 웃었다. 이를 들은 원태희도 “부모님은 제가 밖에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신다”고 재치있게 대답해 한동안 극장 안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영화 <백야>가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며 시네마톡은 문을 닫았다. 오랜만에 자신의 영화를 들고 관객을 만난 이송희일 감독과 두 남자배우의 얼굴에서 기쁨과 설렘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