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영화계에선 이때가 되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올해의 영화를 뽑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유력한 영화매체에서부터 영화를 좋아하는 개인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이 사랑했던 영화를 선정하고 그 리스트를 다른 매체, 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본다. 그리고 아마 이런 ‘뽑기행사’의 최종점은 2013년 2월24일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일 것이다. 예전에 비해 소위 ‘아카데미 약발’이라는 흥행 코드가 많이 약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지는 않다. 외화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아카데미 작품상 영화를 픽업한다는 건 흥행적인 성공과 더불어 자신의 영화적인 취향과 눈썰미를 입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영화를 많이 수입하신 분께서 <난 어떻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잘 예측했나>라는 책을 쓸 정도니, 역시 아카데미는 아직은 살아 있다. 개인적으론 꽤 오랫동안 아카데미 작품상 영화를 손에 넣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매번 문턱에서 좌절한 아픈 기억이 있다. 가장 근접했던 작품상 후보를 쥐고 있었던 몇해 전 마지막 작품상이 호명되는 순간의 긴장감은 마치 오래전 대학교 합격 여부를 확인하러 가는 길만큼 떨렸다.
‘로드 투 아카데미’, 즉 아카데미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 시작점은 1월에 열리는 선댄스영화제부터 시작해서 베를린, 칸, 베니스, 토론토를 거처 12월 말이면 쏟아져 나오는 각종 단체들의 올해의 영화 선정에서 정점을 이룬다. 현재까지 뉴욕비평가협회와 전미비평가위원회, 그리고 보스턴비평가협회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캐스린 비글로의 <빈라덴 암살작전: 제로 다크 서티>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면 그 뒤를 톰 후퍼의 <레미제라블>, 벤 애플렉의 <아르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 데이비드 O. 러셀의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 리안의 <라이프 오프 파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 등이 따르고 있다.
아쉽지만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는 10편의 예상작 중에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영화는 한편도 없다. 물론 주요 부문이 아닌 외국어영화상이나 각색상 정도로 거론되는 영화는 있지만 역시 작품상만큼의 긴박감은 없다. 대신 객관적인 시각으로 두 가지의 관전 포인트로 이번 아카데미를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난 캐스린 비글로의 <빈라덴 암살작전: 제로 다크 서티>가 작품상을 수상할지 궁금하다. 몇년 전 그녀의 영화 <허트 로커>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작품상을 받았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그 영화를 배급했던 회사의 관계자조차 이미 DVD까지 출시된 상황에서 아카데미 캠페인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아카데미 수상이 흥행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완전 다른 분위기다. 대부분의 매체에서 <빈라덴 암살작전: 제로 다크 서티>를 작품상 1순위로 지목하고 있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외국어영화상 수상 또는 후보작에 오를지 여부에 대한 관심이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한국영화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다. 이미 칸과 베니스, 베를린에서 한국영화가 거둔 성과를 감안해보면 사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자! 이제 당신의 올해의 영화를 결정해보자. 그전에 나의 올해의 영화를 고백하면 이렇다. 상을 받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는 않지만 주는 상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져서 개봉하기까지 수많은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힘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영화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올해의 영화의 주인공은 당신 자신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체온이 0.5도는 올라가는 훈훈한 수상 소식이 아닌가!
최근 5년간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의 국내 박스오피스 성적을 살펴보았다.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2009년 수상작 <슬럼독 밀리어네어>다. 110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기록했다. 가장 적은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2008년 수상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다. 6만여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올해 수상작 <아티스트>는 12만여명을, 2011년 수상작 <킹스 스피치>는 80만여명을, 2010년 수상작 <허트 로커>는 17만여명을 동원했다. 최근 5년간의 기록만 살펴보면, 대체로 홀수해의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짝수해의 영화는 흥행에 부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