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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이 정도의 오글거림, 괜찮지 않나?
2012-12-18
글 : 주성철
사진 : 오계옥
<나의 PS 파트너> 변성현 감독

<청춘그루브>(2012)의 아라(곽지민)는 왜 자신을 3인칭인 ‘아라’라고 부르냐는 질문에, “살면서 누가 내 이름 많이 불러주면 좋잖아요. 그래서 나도 나를 ‘아라’라고 불러요”라고 답한다. 올해 초 장편 데뷔작 <청춘그루브>를 내놓았던 변성현 감독이 벌써 두 번째 영화 <나의 PS 파트너>를 내놓았다. 엄혹한 한국 영화계의 현실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감독 변성현은 벌써 올해에만 2번 불렸다. 개성 넘치는 젊은 감각의 등장이다.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청춘그루브> 이전 <무비스타 한재호씨의 메소드 연기>(2006)로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는데, 이미 외모에서 배우 ‘간지’를 풍기는 그는 원래 연기전공으로 <청춘그루브>에서 봉태규와 맞짱 뜨는 맛깔나는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좌충우돌 바로 그 나이대의 성장영화를 진지하게 그려가고 있는 변성현 감독을 만났다.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과 어떻게 승부하기로 마음먹었나.
=염두에 둔 여러 여배우들 중 1순위였다. 어떻게든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은 아니지만 너무 도회적인 느낌만 안 나길 바랐다. <미녀는 괴로워>의 이미지를 깨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김아중 역시 그랬다. 그 나이대의 현실적 고민들이 자연스레 담기길 바랐다. 다만 마지막에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그게 <미녀는 괴로워>의 재탕처럼 느껴질까봐 조심스러워했다. ‘김아중이 노래 부르고 싶어 해서 감독한테 우겨서 그 장면을 꼭 넣었을 거야’라고 생각할까봐 걱정했다. (웃음) 반면 지성은 식사할 때나 술 마실 때나 너무 반듯한 자세의 사람이어서 막 헝클어뜨리고 싶었다. (웃음)

-<청춘그루브>와 비교하면 전형적인 장르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로맨틱코미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이번에 준비하면서 거의 200편 정도 본 것 같다. 확실히 멕 라이언과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90년대 로맨틱코미디가 좋더라. 다만 바꾸고 싶었던 건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백마 탄 공주’를 등장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화해를 하고 고백을 하되 둘이 직접 만나지 않는 상황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여자에게 꽃다발을 들고 가도록 한 게, 내가 고백 받고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다들 너무 남자 시각이라고 핀잔을 주긴 하더라. (웃음) 그럼에도 핵심은 윤정(김아중)의 입장에서 이문세의 노래 <옛사랑>에 나오는 ‘사랑도 지겨울 때가 있지’라는 가사다. 너무 와닿는 가사라 그걸 그대로 쓰려다가 살짝 바꿔서, ‘그런 반복이 지겨워’ 결혼을 하게 된다는 윤정의 대사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컨벤션을 비껴가는 솜씨가 좋다.
=계속 강박적으로 뻔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끊임없이 로맨틱코미디영화들을 본 이유도 사람들이 어디에서 공감하고 어느 정도까지는 안 오그라드는 건가, 그 경계를 알고 싶어서였다. 이 정도로 오글거리는 건 괜찮겠지? 그런 걸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도 오케이 사인을 내릴 때 여자 스탭들에게 물어볼 때가 있었다. 이거 좀 너무 나갔나? 그럴 때 PD님이 ‘아니, 귀여워요’ 그러면 안심하고. (웃음)

-아무래도 가장 복합적인 심리를 지닌 윤정을 위해 김아중과 어떤 대화를 나눴나.
=기본적으로 로맨틱코미디는 가볍기 마련인데 ‘떠’ 보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가령 버스 타고 돌아가는 장면에서 <언페이스풀>(2002)의 다이앤 레인 같은 느낌을 얘기했다. 그 장면의 핵심이 욕정이라면 거기에 뭔가 플라토닉한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말하자면 그게 죄책감인지 추억인지 나도 관객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무책임한 디렉션을 준 거다. 아중씨도 그전까지는 가두리 양식하듯이 답답하게 디렉션을 주다가 갑자기 이 장면에서는 왜 그러냐고 하더라. (웃음) 비슷한 또래로서 허물없이 믿고 의지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간 것 같다.

-‘CJ 프로젝트S’를 통해 <나의 PS 파트너>를 만들게 됐다. 과정은 순조로웠나.
=막연하게 대기업에서 영화 만들면 뭔가 조종당하는 거 아닐까, 걱정하긴 했다. 매회 촬영분을 검사받는다고 그러니까. (웃음)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 이진희 PD님이 너무 연출자 편이어서 그런지, 좋은 방패가 되어줘서 그런지, 별 어려움 없이 작업했다. 오히려 너무 내 마음대로 연출할 수 있게 해주셨다. 결혼식 장면 촬영하는데 3회차 정도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3회까지는 곤란하다고 2회까지만 허락한 거 빼고는(웃음) 전혀 간섭이나 그런 게 없었다.

-그 예상치 못한 결혼식 장면의 전개가 이 영화의 백미라는 생각이 든다.
=연애를 시작할 때는 남자가 약자인데 오래 연애하면 여자가 약자가 된다. 나중에는 깨질까봐 겁나는 거다. 그게 약자의 심리다. 거기서 더 나가면 봐도 못 본 척하게 된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계속 누르고 있다. 그래야 결혼식 장면에서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이크 니콜스의 <졸업>(1967) 이후 결혼식장 쳐들어가는 건 너무 흔한 컨벤션이 됐다. 야외 결혼식 장면으로 할까도 생각했는데 그러면 너무 할리우드영화를 베낀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남자주인공을 결혼식장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김민수 조감독과 PD님과 토론하면서 ‘<졸업>을 돌파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우리끼리 ‘웃픈’ 결혼식이라고 불렀다. (웃음) 자칫 잘못하면 막장드라마의 답습인데 최대한 그러지 않고 ‘웃기면서 슬픈’, 그러니까 하객 가운데 누군가는 웃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러지 못하면서 답답하지 않게 가고 싶었다. 어쨌건 지성이 김아중의 손목을 잡고 뛰쳐나가는 건 절대 아니라고 봤다.

-현승(지성)의 옛 여자친구 소연(신소율) 캐릭터도 좋다. 무척 현실적이다.
=연애를 통한 성장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현승이로 시작해서 윤정이로 끝나는 판타지 멜로다. 그래서 현승과 윤정을 제외한 승준(강경준)과 소연을 현실적인 캐릭터로 만들고자 했다. 보통 로맨틱코미디의 두 번째 여자 조연은 악녀이거나 웃음만 주는 감초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역시 뻔하게 가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 행복할 때 불행해지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그걸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실제 연애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청춘그루브>나 <나의 PS 파트너>나 그냥 인물들을 길거리에 던져놓고 중요한 일들이 막 일어난다. 확실히 젊고 액티브한 감독의 영화다.
=내 촬영장에 친구들이 놀러오면 ‘또 길거리에서 하냐?’ 그런다. (웃음) 내가 처음으로 만든 30분짜리 중편영화 <리얼>은 그냥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영화다. 앉건 걷건 뛰건 얘기하건 하루 동안 그냥 길거리에서 찍었다. <나의 PS 파트너>도 액티브하게 찍고 싶었던 영화다. 실제 내가 좀 그렇다. 너무 없이 자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커피숍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웃음)

-연기전공으로 시작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건가.
=<청춘그루브>도 같이 한 김민수 조감독이 내 영화 동지인데 늘 큰 힘이 됐다. <나의 PS 파트너>는 함께 시나리오도 썼는데, 같은 서울예대 영화과 출신인데도 내가 학교를 거의 안 나가서 나중에 아는 친구의 단편영화에 조연출로 갔다가 알게 된 사이다. 그렇게 현장에서 만난 뒤로 우리 집에 놀러왔는데 몇달 동안 나갈 생각을 안 하더라. (웃음) 그러면서 내가 쓴 글도 보여주고 <청춘그루브>로 영진위 지원을 받게 되면서 조감독도 해줬는데, 내가 글이나 스타일에서 보여주는 아집을 잘 설득해주는 친구다. 다음 작품도 함께 쓸 생각인데, 그 친구도 감독을 해야 하니까 조감독은 안 맡기려고. (웃음)

-이제야 객관적으로 두 번째 영화를 돌아보는 느낌은 어떤가.
=장르적으로 성의있고 공들여 찍은 작품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현승과 윤정의 전화통화 분할화면도 그저 상대방이 녹음한 걸 들려주며 편하게 따로 찍은 게 아니고, ‘마’(장면상의 공백이나 침묵)가 뜨지 않게 하려고 배우들이 직접 와서 대사를 일일이 다 해줬다. 소품이나 장소, 장면 설정 등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주어진 여건 내에서 최대한 어렵고 더 나은 쪽으로 가보려고 애썼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성의있는 작품으로 보이길 바랐다. 그런 점들도 잘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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