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소박한 진솔함 <페어리>
2012-12-19
글 : 이기준

사랑이 시작되는데 꼭 로맨스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그만 여관에서 야간당번으로 일하고 있는 돔(도미니크 아벨)에게 어느 날 저녁 피오나(피오나 고든)라는 낯선 여인이 찾아온다. 맨발에다 차림새도 엉망인 여인은 여관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자신이 요정이며, 돔의 소원을 세 가지 들어주겠노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희한한 방식으로 ‘들이대는’ 피오나를 본체만체하는 돔이지만, 다음날 아침 그토록 원하던 파란 스쿠터가 여관 현관에 놓여 있는 것을 보자 약간은 허술하고 멍한 이 남자는 정말로 그녀가 ‘요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남녀는 곧장, 사랑에 빠진다.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희비극 스타일에 무용과 마임을 곁들인 기묘한 연기방식으로 주목을 받아왔던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 브루노 로미 트리오가 2011년작 <페어리>로 다시 뭉쳤다. 전작 <빙산>(2005)과 <룸바>(2008)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인정받은 이들은 프랑스 코미디영화의 거장 자크 타티의 뒤를 이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춤추는 자크 타티’라는 별명에 걸맞게 이들의 영화는 기상천외하고 묘한 구석이 많다. 가진 것도 변변찮고 어딘지 모르게 나사도 하나둘 빠져 보이는 돔과 피오나는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춤을 추거나 갑자기 애크로바틱한 몸동작으로 사랑을 주고받는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지만, 영화는 관객이 곧 그 기교없고 능청스러운 몸짓을 통해 약간 모자란 두 커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물론 약간의 실소와 함께). 이 천연덕스러운 유머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마도 세편의 영화를 통해 각본, 연출, 연기 작업을 함께해온 트리오가 삶에 대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페어리>는 다소 우스꽝스럽고 너저분하지만 소박한 진솔함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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