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듯 <누나>
2013-01-02
글 : 이주현

윤희(성유리)는 폭우가 쏟아지던 날 강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다 익사한 동생을 잊지 못한다. 그날 이후로 윤희는 땅만 보고 걷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외출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죽고 동생이 살았어야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버지의 반복되는 구타도 그저 묵묵히 견딜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윤희는 동네 골목길에서 고등학생 진호(이주승)에게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 있는 지갑을 빼앗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진호의 학교 식당에서 급식도우미와 학생으로 다시 만난다. 진호에겐 가족이 어머니뿐이다. 어머니에게 폭행을 일삼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진호를 버리고 돈 많은 여자에게 새장가를 들었다.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를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 진호는 어머니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보호자다.

<누나>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두 사람, 윤희와 진호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자신의 상처를 꽁꽁 싸맨 채 속으로 아픔을 삭이는 윤희와 상처를 감추기 위해 거친 욕설과 폭력을 생존의 방편으로 삼은 진호는 얼핏 대척점에 선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찍어낸 듯 비슷한 문양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서로의 치부를 보여주고 치부를 덮어주면서 조금씩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진다. 영화의 온도도 그렇게 천천히 올라간다. 그렇기에 영화의 성급한 마무리가 아쉽게 느껴진다. 위기와 갈등을 부풀려놓은 다음 급하게 이야기를 봉하면서 서사의 구멍이 커져버렸다. 애써 쌓아올린 감정도 함께 무너져내리는 건 당연한 이치다. 캐릭터가 중심인 영화다보니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데, 독립영화계의 스타 배우 이주승의 날선 연기를 눈여겨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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