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강남에 가면 예술영화가 있다
2013-01-09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미니 씨어터 아트나인 개관 기념 1월9일부터 엣나인 필름 페스티벌
<더 헌트>

소수의 멀티플렉스 체인이 한 영화의 운명을 쉽게 좌지우지하는 세상이다. 그들이 운영하는 예술영화 혹은 독립영화 전용관도 자본의 논리에 구속돼 있다. 그 거인들을 상대로 작은 영화들의 권리를 보호해줄 곳이 절실한 이유다. 반갑게도 1월9일, 예술영화관이 드문 강남에 ‘미니 씨어터 아트나인’이 문을 연다. 개관을 기념해 1월9일부터 16일까지 ‘엣나인 필름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앞으로 아트나인이 ‘영화의 집’으로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엿볼 수 있는 기회로 손색이 없다.

상영작은 총 6개 섹션으로 나뉜다. 그중 5개 섹션은 예술영화관을 즐겨 찾는 관객이 재회를 기꺼워할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씨네 라이브’ 섹션에서는 그룹 퀸의 1981년 공연 실황 기록을 5.1채널 사운드로 복원한 <퀸 락 몬트리올>과 세계 음대생들이 협연을 희망하는 거장 지휘자 6인의 공연을 담은 <마에스트로> 1편부터 6편까지가, ‘발리우드 인 서울’ 부문에서는 <세 얼간이>와 <지상의 별처럼>을 포함해 4편이, ‘영화의 가능성을 열다’에서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하트비트>와 스웨덴에서 온 특별한 음악영화 <사운드 오브 노이즈>, 밀실 스릴러의 궁극 <베리드> 등이, ‘영화가 세상을 바꾸다’에서는 <인 어 베러 월드> <아르마딜로> <남영동1985> <어둠의 아이들> 등 정치적 이슈와 맞닿아 있는 영화들이, ‘두근두근 핑크!’에서는 이노우에 준이치 감독의 <전쟁과 한 여자>, 제제 다카히사 감독의 <검은 드레스의 여자> 등이 상영된다.

관객의 호기심을 보다 자극할 목록은 개막작 <더 헌트>와 ‘신작 쇼케이스’ 섹션일 것이다. <더 헌트>는 덴마크 출신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간만의 복귀작으로, 한 무고한 남자가 아동 성학대범으로 몰려 지역사회에서 매도당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없던 죄를 있게 하고, 어른들의 상상력이 마녀사냥식 재판을 가능케 한다. 법과 도덕의 모순에 관한 지독한 실험이라 할 만한 영화로, 주연을 맡은 매즈 미켈슨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스위니>

‘신작 쇼케이스’에서 제대로 된 안식처를 찾은 작품 중 하나는 애니메이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던 작품으로, 배고픈 솔로 뮤지션 곰 어네스트와 곰과의 금기된 우정을 꿈꾸는 아기 생쥐 셀레스틴의 각별한 동거가 퍽 감동적이다. 수채풍의 서정적인 그림도 3D애니메이션에 시달린 눈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역시 프랑스에서 건너온 <까밀 리와인드>는 풋풋했던 16살로 돌아간 40대 ‘돌싱’ 까밀의 인생 복습기다. 어머니의 죽음, 남편과의 만남, 선생님과의 사랑,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시간임을 깨달은 그녀는 새로운 삶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딛는다.

위의 두 영화가 인간의 고독을 동물 의인화나 시간여행의 테마로 극복해낸다면, <하이재킹>과 <스위니>는 해적이나 범죄조직을 상대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둘러싼 비정한 풍경을 다룬다. <하이재킹>은 해적에 납치당한 선원들, 그들을 무사귀환시켜야만 하는 사장, 양쪽의 관점에서 평행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망망대해와 밀폐된 사무실, 동떨어진 공간 속에서 인간의 조건과 목숨의 가격을 시험해보는 스릴러다. 그에 반해 닉 러브 감독의 <스위니>에서는 어느 타락한 경찰이 우여곡절 끝에 인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한다. 갱스터 장르에 얼마간 빚지고 있는 이 액션물은 마초들의 세계를 한번 붕괴시킨 뒤 다시 재건하기에 이른다. 그외 유지태 감독의 <마이 라띠마>, 김동호 감독의 <주리>, 이지승 감독의 <공정사회> 등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만남의 기회를 가진 바 있는 한국영화 3편도 상영된다. 이외에도 많은 예술영화, 독립영화들이 앞으로 아트나인에서 관객과 소중한 만남을 이어갈 것이다. ‘엣나인 필름 페스티벌’은 단지 그 소박한 첫걸음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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