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인생의 바닥에 내려갔다고 느낄 때 <프레셔스>
2013-01-09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는 “모든 것은 우주로부터의 선물이다”라는 말로 시작되지만, 우주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소녀가 등장한다. 1987년, 할렘에 사는 16살 소녀 프레셔스는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고 여기지 않는다. 여느 아이들처럼 스타가 되어 멋진 모습으로 잡지에 나오는 상상을 하고 밝은 피부색을 가진 남자친구를 원하지만 현실의 그녀는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뚱뚱한 외톨이다. 제대로 읽고, 쓸 줄도 모르기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놀림감이다. 유일하게 프레셔스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봐주는 수학선생님은 그녀의 짝사랑이다. 공상 속에서 수학선생님과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잠시 꿈꿔보기도 하나, 프레셔스가 처한 상황은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지경이다. 프레셔스는 엄마의 애인에게 성폭행당해 이미 한 아이를 출산했고, 지금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엄마는 아무 일도 안 하고 딸과 손녀에게 지급되는 정부보조금으로 생활하면서 딸에게 온갖 집안일을 시키는 것은 물론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다.

프레셔스가 처한 환경은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조심스러울 만큼 처참하다. 먹고, 텔레비전 보고, 먹고, 텔레비전 보는 것이 생활의 전부인 엄마는 딸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이고 뚱뚱하다고 욕설을 퍼붓는다. 엄마는 프레셔스가 부엌 바닥에서 첫아이를 낳을 때 돕기는커녕 발길질을 하였지만 그 덕에 생활보조금을 타서 생활한다. 엄마에게 딸은 내 남자를 유혹한 사악한 계집애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필요도 없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끝없이 잔소리를 퍼붓는다. 독립할 만한 여건이 못되어 할 수 없이 모욕을 견디며 사는 프레셔스에게 교장선생님이 뜻밖의 제안을 하고 이것은 그녀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인생의 바닥에 내려갔다고 느낄 때, 주저앉는 사람도 있지만 마지막 주어진 기회를 간절하게 붙드는 사람도 있다. 프레셔스는 교장선생님이 추천해준 대안학교 ‘이치 원 티치 원’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후의 희망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용기를 내어 찾아간다. 그러나 선뜻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앉아 망설이는 그녀를 발견한 선생님은 “20초 뒤에 교실 문을 닫을 거야”라는 한마디를 건넨다. 다른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로 구성된 교실은 언뜻 보기에도 제멋대로다. 옷차림부터 말투까지 문제아들의 집합소라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자신의 이름을 블루 레인이라 소개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어디 출신이고, 무슨 색을 좋아하고, 자신은 무얼 잘하는지 소개하는 것부터 수업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프레셔스가 자신은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다고 대답하자, 선생님은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으니 잘 생각해보라고 권유한다.

알파벳도 잘 모르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선생님의 방식은 독특했다. 바로 일기쓰기다. 철자가 틀려도 좋고 무엇을 써도 좋으니 매일 쓰는 것만은 지키라는 지시다. 일기쓰기는 “회전문”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며, 누구는 안으로 들어가고 누구는 다시 돌아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프레셔스>는 어찌 보면 정말 어두운 영화다. 불과 16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소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내 책상 위의 천사>(감독 제인 캠피온, 1990)처럼 못 생기고 뚱뚱한 소녀가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 멋진 작가가 되는 결말 같은 것도 없다. 혹독한 현실을 날것으로 봐야 하는 고통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란 지속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는 걸 느끼게 한다. 더불어 ‘글쓰기’는 그것이 낙서든 일기든 소설이든 인간을 성찰하게 하고 한 걸음 나아갈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는 중요한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쓰기는 ‘프레셔스’한 존재가 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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