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이광수는 참 많은 별명을 얻었다. 모함광수로 시작해 기린, 광바타, 배신의 아이콘, 초통령 그리고 최근의 구광표까지 그의 별명은 끝도 없이 뻗어나갈 기세다. 이게 다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는 <런닝맨>에서 남에게 잘 속고 또 틈만 나면 남을 속이려드는 만만한 모사가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의 예능감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중요한 건 예능감만큼이나 그의 연기력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거다. 이광수는 첫 영화 <평양성> 이후 2년 동안 <원더풀 라디오> <간기남> <내 아내의 모든 것> <마이 리틀 히어로>까지 네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마이 리틀 히어로> 촬영이 끝나갈 무렵엔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를 시작했다. 주인공이었던 적은 없지만 주인공보다 작아 보였던 적도 없었다. <마이 리틀 히어로>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이 리틀 히어로>에서 이광수는 유일한(김래원)이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있는 극단에서 썬더맨으로 활동하고 있는 삼류 뮤지컬 배우 정일을 연기한다. 정일은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다. 하지만 이광수는 자신이 스크린에서 손톱만 하게 보일 때조차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한다. 그게 눈에 보인다. 2013년, 이제는 이광수가 예능의 기린아에서 진짜 배우로 인정받을 시간이다.
-<평양성> 이후 차곡차곡 작품이 쌓이고 있다.
=가끔 인터넷으로 이름도 쳐보고 내가 했던 것들을 찾아보는데, 2012년을 게으르지 않게 보낸 것 같아 뿌듯하다.
-기사 검색은 자주 하나.
=나에 관한 어떤 기사가 나오는지 살펴보는 정도다. 내가 어떤 얘길 듣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안티팬이 없는 것 같다.
=편하게 생각해주는 것 같다. 옆집에 사는 친근한 총각 같아서 응원도 많이 해주시고. 놀랐던 게 연말에 (연기)상 못 받은 걸로 그렇게 위로를 많이 해주시더라. 난 괜찮은데.
-1월1일엔 뭐했나.
=(송)중기네 집에 계속 있었다. 같이 점심 먹고, 저녁엔 떡국 먹고. 둘 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만나면 각자 자기 할 일 하고 그런다.
-송중기와는 <런닝맨>을 하며 친해진 건가.
=그때 처음 만났다. 서로 성격이 달라서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둘 다 처음하는 예능이라 서로 의지도 많이 했고.
-<마이 리틀 히어로>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굉장히 집중해서 읽었다. 김래원 형과 이성민 선배님과도 꼭 한번 같이 연기해보고 싶었다.
-<마이 리틀 히어로>의 정일은 이광수의 예능 이미지를 참고해 만든 캐릭터 같았다. 어수룩한 면도 있고 유일한 감독에게 비굴하게 빌붙는 모습도 그렇고.
=대본에 충실했다. 워낙 처음부터 정일이란 인물이 나한테 잘 맞게 그려져 있었다. 물론 작가님이 나를 생각해서 정일이를 만든 건 아닐 거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준 정일의 비굴함과 <런닝맨>에서 내가 보여주는 비굴함은 다르다. 정일이는 연기에 대한 꿈과 열정이 있지만 사실 그 꿈을 이룰 만큼 실력이 뛰어나진 않다. 주변에서 무시도 많이 당하고 항상 주눅이 들어 있다. 하지만 꿈이 있기 때문에 유일한 감독에게 조심스레 부탁도 하고 그러는 거다.
-영화를 보고 이렇게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 참 오랜만에 본다는 생각을 했다.
=촬영할 때 내 위주로 촬영할 때가 있고 내가 백으로 걸릴 때도 있는데, 사실 앞에 있건 뒤에 있건 정일이는 그저 자기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다.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고 해도 그 배우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정일이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오디션 현장의 방청석에서 응원을 할 때도, 그 수많은 방청객 중 가장 열심히 응원을 하는 것 같았다.
=감사하다. 그런데 혼자 튀는 것보다 사람들과 잘 섞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기의 강약 조절, 그 수위를 잘 지키고 싶은데 사실 어렵다.
-희석(이성민)과 함께 유일한의 집에 찾아가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는 아주 평범한 장면에서도 디테일한 연기가 돋보였다.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으려다 엉덩이가 미끄러지는 상황을 연출했는데, 센스가 좋은 배우구나 싶었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만든 장면이다. 시나리오만 봤을 땐 현장에 어떤 의자가 있을지, 어디에 어떻게 의자가 놓여 있을지 모르잖나. 리허설하면서 이것저것 활용해보는 거다. 그건 현장이 편하고 내가 자유로울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번 현장은 너무 편했다. 이 안에서 내가 어떻게 더 잘 놀 수 있을까 고민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이성민 선배님도 자신을 때려도 좋고 막 대해도 좋으니까 편하게 연기하라고 말씀해주셨다.
-타이트한 썬더맨 복장 때문에 바지를 엉거주춤 붙잡고 있는 장면도 재밌었다. 시나리오엔 그런 자세한 지문까진 없었을 텐데.
=썬더맨 복장을 하고 와이어를 탔는데 진짜 아프더라. 와이어는 예전에 광고 찍을 때 잠깐 경험해본 적 있는데, 이번처럼 팬티식으로 와이어를 맨 건 처음이었다. 음… 남자들은 엄청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리허설을 하면서 깜짝 놀랐다.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아프더라. 그렇게 해서 리허설 때 나온 동작을 촬영 때 썼다.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복장이 거부감없이 잘 어울린다. 혹시 썬더맨 복장 입었을 때 희열을 느꼈나.
=이거 칭찬인가. (웃음) 사실 특이한 걸 좋아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또 더 좋다.
-실제로 열아홉, 스무살 때 극단에서 아동극을 한 경험이 있던데.
=촬영 들어가기 전에 영화 속 썬더맨 단원들하고 뮤지컬 장면을 몇 신 짰다. 그때 예전에 아동극 했던 게 은근히 도움 되더라. 당시 아동극 했을 때도 영화 속 상황과 비슷했다. 그때 내가 맡은 건 <오즈의 마법사>의 허수아비 역이었다. 처음 <마이 리틀 히어로> 시나리오 읽었을 때 당시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마이 리틀 히어로>의 영광을 연기한 아역배우 지대한군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로 이광수를 꼽았다.
=크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질 거다. (웃음) 대한이는 하는 짓이 너무 예쁜 아이였다. 주인공으로 연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잘 소화해줬다. 촬영 몇 개월 전부터 대한이가 춤과 노래와 연기를 준비했는데 그걸 촬영 때마다 쪼개서 보여줘야 하잖나. 부담스러웠을 거다. 그래서 긴장감을 풀어주려고 했다. 딱히 내가 뭘 해준 건 없다. 대한이가 날 많이 챙겨줬다. 대한이도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어느 순간 편안함을 넘어 만만한 사람이 된 건가.
=어느 순간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다. 그런데 내가 낯을 많이 가려서 상대에게 잘 다가가질 못한다. 상대가 날 편하게 생각하고 먼저 다가와주면 그것만큼 고마운 게 없다.
-<…착한 남자>에서의 정극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동안은 코믹한 캐릭터를 주로 맡았는데 <…착한 남자>의 대길은 부러 웃기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걱정보다 욕심이 컸다. 나를 믿어준 이경희 작가님에겐 지금도 참 고맙다. 그리고 전체 극에 잘 묻어가고 싶었다. 진지하고 심각한 장면인데 나로 인해서 웃음이 터져버리면 안되니까. 내가 진지한 연기를 했을 때 보이는 그대로 진지하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꼈을 땐 자신감도 좀 생겼다.
-<런닝맨>엔 계속 출연할 생각인가.
=그러고 싶다. 처음에는 예능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프로그램에 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소심해지기도 했고 주눅들어 있었던 것도 같다.
-지금은 알을 깨고 나왔다.
=많이 편해졌다. 방송을 보면 이젠 내가 즐기고 있고 놀고 있는 게 보인다.
-유재석이 돌발적으로 만들어내는 상황극에 순발력있게 몰입하는 능력도 좋다.
=<런닝맨> 할 때는 진짜 막 한다. 평소엔 생각이 많아서 많이 거르고 순화해서 말하고 행동하는데 <런닝맨> 할 때는 그러지 않는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형들이 다 받아주고 재밌어하고 예뻐해줘서 그럴 수 있다. 평상시엔 그렇게 못 살지. <런닝맨>에서 하는 것처럼 산다면 미친놈 소리 들을 거다. (웃음)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와 언젠가 해보고 싶은 연기는 뭔가.
=아직 내가 잘한다고 얘기할 만큼 잘하는 건 없지만 그래도 꼽아보자면 불쌍한 역할이다. 해보고 싶은 건 악역이다. 동정표를 얻을 수 있는 나쁜 사람. 지금 당장은 아니고 언젠가 악역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