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과 탈세를 전문으로 하는 자들이 국정을 맡으며 “나는 법밖에 모른다”고 말하는 시대니 <레미제라블>의 흥행돌풍과 그에 대한 평들이 유행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21세기적 관점에선 시시했다. 장발장은 수양딸을 귀족과 결혼시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마리우스는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품은 귀족으로 남겨지며, 코제트는 아아, 그림처럼 우아하게 비껴 서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내게 매력적인 건 코제트의 엄마 판틴과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인데, 판틴의 <I Dreamed a Dream>과 에포닌의 <On My Own>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노래하는 동시에 그 노래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며 또한 사회적이다. 특히 에포닌. 뭔가(그게 비록 짝사랑하는 남자의 관심일지라도)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 여자는, 최후의 순간 사랑을 고백하는 원작과 달리 뮤지컬과 영화에선 그저 주변의 비극으로 그려져 아쉬웠다. 그녀야말로 이 ‘19세기의 고전’을 21세기적으로 해석하고 싶게 만드는 캐릭터가 아닐까. 이 아쉬움은 뮤지컬에서도 에포닌을 연기한 사만다 바크스의 <On My Own>으로 달래지는데, 가슴 절절한 솔로가 오랫동안, 의미심장하게 귓가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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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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