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양반 머리통이 진짜 크대요. 목소리는 섹시하고.” <프로스트 VS 닉슨>(2008)에서 닉슨 전 대통령(프랭크 안젤라)을 인터뷰하러 간다는 프로스트(마이클 신)에게 한 여자가 그렇게 얘기한다. 그런데 하나 더 덧붙이자면 프랭크 란젤라는 머리통도 크지만 그게 별로 티나지 않을 정도로 체격도 좋다. 상대를 압도하는 목소리도 물론이다. 그런 그가 가끔 치매 증세에 시달리는 전직 금고털이범으로 돌아왔다. <프로스트 VS 닉슨>에서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은퇴자”라고 했던 그가 <로봇 앤 프랭크>에서 매일 집과 도서관만 오가는 영락없는 ‘백수’ 신세가 된 것이다. 프랭크 란젤라의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으며 시작하는 <로봇 앤 프랭크>는 어쩌면 <A.I.>의 양로원 버전쯤 된다. 작품 수와 존재감에 비해 그동안 덜 알려졌던 프랭크 란젤라의 진면목을 들여다본다.
짙은 눈썹에 단호한 표정, 프랭크 란젤라는 언제나 위엄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를 떠올리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보자. 울리히 에델의 <육체의 증거>(1993)에서 영화 속 마돈나의 옛 애인으로 법정에 나와 그녀와의 성생활(자신을 묶고 그녀가 자위를 했다는 등)을 생생히 증언했고, 레니 할린의 <컷스로트 아일랜드>(1995)에서 “배신자는 모조리 산 채로 요리를 해먹어버리겠다”고 말하던 잔인무도한 해적 두목으로 나와 결국 지나 데이비스가 쏜 대포를 맞고 족히 10여 미터는 날아가 바다로 나가떨어졌고, 에이드리언 라인의 <로리타>(1997)의 마지막에 제레미 아이언스의 총에 맞아 죽음을 고한 미치광이였으며, 로만 폴란스키의 <나인스 게이트>(1999)에서 악마에 관한 고대 주술서만 모았다며 조니 뎁을 서고로 데려가던 수집가였다. 그는 비중과 무관하게 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외모에 걸맞게 언제나 ‘거물’을 연기할 때 그의 개성은 빛났다. 그래서 영악하고 빈틈없는 비서실장 ‘밥’으로 나온 <데이브>(1993)에서 연설문을 낭독하는 가짜 대통령(케빈 클라인)의 변화를 보며 그가 깜짝 놀라는 순간이 바로, 관객으로 하여금 가짜 대통령을 진짜로 믿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말하자면 그가 속으면 다 속는 거다. 최근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덩달아 유명세를 탄 <데이브>에서 ‘<데이브>의 류승룡’이라고 불렸던 이가 바로 그다.
그는 늘 강인한 남자였다
물론 프랭크 란젤라의 최고작은 역시 론 하워드의 <프로스트 VS 닉슨>이다. 1938년 1월1일 미국 출생으로 칠순을 훌쩍 넘긴(앤서니 홉킨스보다 한살 어리고 ‘간달프’ 이안 매켈런보다 한살 많다) 그는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할 것 같지만, 오스카로 보자면 <프로스트 VS 닉슨>의 닉슨 대통령 역으로 남우주연상에 딱 한번 노미네이트된 적 있다(수상은 <밀크>의 숀 펜). 그만큼 그는 수많은 TV드라마는 물론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시스케이프>(1975) 등으로 수차례 토니상을 수상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화려한 주연보다는 인상적인 조연으로 기억돼왔다. <프로스트 VS 닉슨> 출연 당시에도 투자사는 더 유명한 노배우를 캐스팅하길 원했지만 론 하워드는 상대역인 ‘프로스트’의 마이클 신과 더불어 무조건 그여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닉슨 대통령과 목소리도 다르고 기질도 다르지만 매번 새로운 디테일과 품성을 드러낸다. 닉슨 대통령을 ‘흉내’내려는 배우는 싫다”는 게 그의 얘기였고, 이에 프랭크 란젤라는 “닉슨 대통령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 악마와 조우하고 싶었다”고 화답했다. 잠깐 얘기를 나눈 사람의 거의 모든 디테일을 기억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사실까지 유추하며, 기념사진을 함께 찍은 젊은 여자에게 “나중에 내 사진 나오면 벽에 걸어둬요. 진보파 친구들이 다트 판으로 쓰게”라며 농담을 건네는 넉살 좋고 노련한 닉슨은 그렇게 태어났다.
여러모로 위엄있는 영국 출신 배우가 아닐까 짐작하게 만들 정도로(실제로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미국 뉴저지 출신이며 시러큐스대학에서 연기를 배웠다), 프랭크 란젤라는 어딘가 ‘헐렁한’ 노인으로 출연한 기억이 별로 없다. 실제 그 눈빛처럼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그를 영화배우로 인지시켜준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가 존 바담의 <드라큐라>(1979)라면 크리스토퍼 리, 리처드 록스버그와 함께 영화와 TV를 오가며 드라큘라와 셜록 홈스를 동시에 연기한 몇 안되는 배우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 또 인상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에디>(1996)에서 만난 우피 골드버그의 한때 애인이었다는 사실이다(<프로스트 VS 닉슨>에서 프로스트에 대한 정보를 듣던 보수적인 그가, 프로스트가 과거에 흑인 여자와 사귀었다는 사실에 인상을 찌푸리는 ‘깨알’ 같은 재미). 어쨌건 <에디>에서도 고집 센 구단주 역할이었으니, 그에게 <로봇 앤 프랭크>의 전직 금고털이범 프랭크 역할은 거의 처음 만나게 되는 허허실실 여유로운 캐릭터다.
과거는 물론 최근작들에서도 그 이미지가 여전했기 때문에 그 괴리는 크다. <더 박스>(2009)에서 아서(제임스 마스던)와 노마(카메론 디아즈)를 찾아와 믿기 힘든 제안(상자 속 버튼을 누르면 100만달러를 받을 수 있지만 대신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가 죽게 된다는)을 건네는 흉측한 얼굴의 불청객으로 나올 때도,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10)에서 제이콥(샤이어 라버프)의 ‘멘토’로 등장해 지하철에 몸을 던질 때도, <올 굿 에브리씽>(2010)에서 아들 데이빗(라이언 고슬링)에게 가업을 물려주려는 재벌로 등장할 때도 늘 흔들림없고 심지가 곧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로봇 앤 프랭크>는 언제나 든든하고 굳건한 조연으로 인상적이었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사생활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는 느낌이랄까. 마치 실제의 그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말하자면 그가 말끔한 정장이 아닌 가벼운 러닝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온 영화를 본 적이 있었던가.
그는 ‘헐렁한’ 남자이기도 하다
평화롭다 못해 따분하기까지 한 전원생활을 보내던 프랭크는, 로봇만능주의자인 아들이 보내온 VGC-60L이라는 귀찮은 로봇 불청객과 함께 살게 된다. 취침시간부터 식습관, 그리고 규칙적인 산책 같은 운동습관까지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놓는 로봇과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그 전쟁은 발발 직전 무산된다. 로봇이 그의 카리스마에 녹아든 것이다. 힘없는 그가 로봇에게 적응하는 게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로봇이 그의 ‘부하’가 된다. 은퇴는 했어도 역시 프랭크 란젤라의 ‘성격’은 그대로인 거다. 로봇이 자신의 전성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열쇠를 따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서는 로봇을 자신의 일에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노인이 또 어디 있을까. 그렇게 그들은 눈엣가시 같은, 프랭크의 마지막 보금자리나 다름없는 마을 도서관을 위기에 빠트리려는 새로운 사서를 타깃으로 삼는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운운할 필요도 없이 그냥 그렇게 된다. ‘로봇이 왜 저러지?’라고 의문을 갖는 순간 재미는 반감된다. 저럴 수도 있구나, 마음 편히 지켜보면 된다. 로봇은 그저 프랭크 란젤라의 지시를 순진하게 잘 따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주인이 프랭크 란젤라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로봇 앤 프랭크>에서 로봇이 무표정한 디자인의 특색없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아마도 그런 프랭크의 개성을 그대로 입히기 위함일 것이다. 어쩌면 <언터처블: 1%의 우정>(2011)에서 느꼈던,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둘만의 우정’을 그렇게 의리있는 로봇과 치매 걸린 노인이 나눈다. 프랭크 란젤라는 괴팍하면서도 귀여운, 결코 얌전하지 않은 노인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못된 짓을 할 때는 못돼 보이고 착한 짓을 할 때도 못돼 보인다. 그런데도 자연스레 귀여운 괴팍함을 만들어낸다. 프로그래밍된 것 외에는 반응하지 않는 로봇이 공범으로 엮여 들어가는 것 자체가 그 인간적 매력에 감화된 것은 아닐까. 물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프랭크 란젤라는 로봇 외에도 관계가 소원한 아들(제임스 마스던)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착한 딸(리브 타일러), 그리고 나중에 가서야 밝혀지는 아내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관계 안에 놓인 노인 캐릭터를 말 그대로 ‘다이내믹’하게 만들어낸다. 이 배우의 진짜 매력을 뒤늦게 알아가게 됐다는 것이 그야말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