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x&talk]
[김기천] 나를 키운 건 8할이 모멸감이다
2013-01-25
글 : 주성철
사진 : 백종헌
데뷔작 <서편제>부터 신작 <7번방의 선물>까지 늦깎이 배우 김기천

김기천, 이름만 들어서는 누군가 하겠지만 얼굴만 보면 안다. 이미 당신이 여러 한국영화에서 한번은 꼭 만났던 익숙한 얼굴이다. 그와 함께 <짝패> <부당거래> 등을 작업한 류승완 감독이 또 다른 개성파 배우 ‘우현’과 비교했을 정도로, 출연한 작품을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왠지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서 꼭 본 것처럼 느껴지는 친근한 배우다. 지난해만 해도 <이웃사람>에서 제일 먼저 죽임을 당하던 경비원 황씨, <점쟁이들>에서 박 선생(김수로)과 함께 하얀 두루마기와 검은 모자를 쓴 충렬 선생, <26년>에서 미진(한혜진)의 사격용 총기를 인명살상용으로 개조해주던 짱구 노인으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여러 영화에서 감초 노릇을 톡톡히 해오던 그가 <7번방의 선물>에서 자해공갈범으로 교도소 7번방에 들어온 최고령자 ‘서 노인’으로 등장한다. 굵게 ‘치고 빠졌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한달여 동안 류승룡, 오달수, 박원상, 김정태, 정만식 등과 호흡을 맞추며 모처럼 진한 동료애로 작업한 작품이다. 그렇게 오래 진득하게 보지 못한만큼 궁금한 것이 많았다. 뒤늦은 데뷔작 <서편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 김기천’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참고로 이제 그는 곧 박명랑의 <분노의 윤리학>과 김용화의 <미스터 고>로 찾아올 예정이다.

-7번방의 동료 배우들과는 오랫동안 부대끼며 정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만났을 때부터 어색함이 별로 없었다.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고 그냥 잘해줘서 그런가. (웃음) 물론 한창 무덥던 지난해 여름, 갇힌 교도소 세트장에서 촬영하다보니 24시간 내내 화기애애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다들 배려심이 넘쳤다. 교도소 야외장면을 찍은 익산교도소 세트장은 또 어마어마하게 더웠다. 그런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 한 배우가 컨디션이 안 좋고 예민해 보이면 다른 배우가 신경 써서 봐주고 또 농담으로 풀어주며 촬영을 이어갔다. 나로서는 그렇게 오래도록 뭔가 ‘함께 가는’ 영화가 오랜만이어서 참 아름답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서 노인은 참 사람 좋아 보이는데 자해공갈범으로 들어온 사람이다.
=원래 작품을 준비하던 중에는 존속살해범이라는 설정이었다. 물론 그 이유가 시나리오에 설명돼 있진 않지만, 존속살해라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는 인물일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저렇게 좋아 보이는 사람이 죽인 존재가 과연 마누라일까 딸일까 하고. 나는 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7번방에서 몰래 숨어 지내는 용구(류승룡)의 딸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는 시선과도 연결되니까.

-온화한 인상의 ‘소시민’ 캐릭터로 주로 알려졌지만 몇몇 영화에서는 그걸 뒤집기도 했다. <짝패>에서 별 표정 변화도 없이 고문을 하던 ‘살수’ 역할이 기억에 남는다.
=감독님들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선하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반대로 야비하고 치사한 캐릭터에 가깝다고 보는 분들도 있다. (웃음) 대표적으로 류승완 감독이 그렇다. <짝패>(2006)도 그렇고 <주먹이 운다>(2005)의 일수쟁이나 <부당거래>(2010)의 이중적인 감찰관도 그 연장이었다. 돌이켜보면 영화 데뷔작 <서편제>(1993)에서 약장수로 나올 때부터 이미 좀 그런 이미지였다. 나로서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할 때 좀더 쾌감이 있긴 하다. 평소 자신감도 별로 없어서 전혀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랄까. (웃음)

-<서편제> 이전에 어떻게 연극배우가 됐는지 궁금하다. 무작정 상경해 ‘극단 아리랑’에 들어간 것도 배우의 꿈 때문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맞다. 나에게 배우 인생이란 전혀 예정에도 없던 거였다. 충청도에서 돈 벌려고 무작정 서울로 왔는데, 연극은 좀 좋아해서 연극 보러 대학로에 나왔다가 전봇대에 붙어 있는 극단 아리랑의 단원모집 공고를 봤다. 단원으로서 굳이 배우를 하겠다기보다 그저 잡일하며 지내다가, 저녁때는 멋진 배우들하고 같이 막걸리도 먹고 그러겠구나, 가까이에서 배우들을 보면 참 좋겠구나, 그런 생각이 먼저였다. 그러니 다른 일을 구할 때까지 좀 있어보자고 생각했다. 당연히 배우 외에도 포스터 붙이러 다니는 그런 잡일을 할 인력이 필요하니 일단 들어와보라고 했다.

-그러다 첫 번째 출연하게 된 작품은 뭔가.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다룬 <아버지의 해방일기>라는 연극을 하는데, 동네 사람도 필요하고 하니까 한복 입고 나오는 마을 할아버지 중 한명인 장기수를 연기했다. 그때도 대머리 비주얼이라. (웃음) 어렴풋하게나마 연극을 통해서 세상에 뭔가 말할 수 있구나, 좋은 연극이 좋은 세상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오래 개개다 보니 뭔가 풀리는 게 있더라.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결혼도 극단에서 했다. 하루는 극단 여자후배들 모아놓고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중 순진한 한 후배가 피자를 좋아한다기에 피자 사주며 데이트한 뒤로 내게 넘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웃음) 그런데 결혼식을 치를 돈이 없어서, 고향 시골의 조그만 문화원 같은 데서 일하는 아는 형에게 거길 결혼식장으로 빌려 쓰면 안되겠냐고 했다. 결혼식을 할 거면 대관료는 따로 안 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난방비 겸 해서 5만원만 주고 전통혼례를 올렸다. 주례는 극단의 김명곤 선배가 봐줬다. (웃음)

-결혼하기 훨씬 전 영화 데뷔작 <서편제>의 주인공이 김명곤이다.
=<서편제>에 출연하게끔 소개시켜준 것도 그렇고, 요즘 말로 나에게 ‘멘토’다. 그런데 공연할 때마다 나에게 너무 지청구(꾸지람)를 했다. 보통 단원들은 20대 초중반인데 나는 30대 초반에 시작했으니 극단에서 제일 나이도 많았기에 모멸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래, 이번 작품만 끝나면 다시는 하지 말자’ 하고 생각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나보다 5살밖에 많지 않아서 분한 느낌이 들 때도 많았다. (웃음) 그런데 정말로 그 사람이 없었으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가장 고마운 사람이다. 배우이지만 연출가로서도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머리로는 알지만 정작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 디렉션과 마주했을 때 ‘이렇게 해보자’ 그러면서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면 확 풀릴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최근 <광해, 왕이 된 남자>에도 출연하면서 다시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한번 다 같이 만나기로 했다. 요즘 현장 시스템에 대해서는 이제 내가 더 잘 아니까 조언해줄 게 많을 것 같다. (웃음)

-그럼 <서편제>의 임권택 감독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
=사실 첫 영화 현장이어서 그랬는지 전체적인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나처럼 별것 없는 무명배우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첫 촬영 때 약장수 캐릭터에 맞게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해갔다. 시나리오에는 “이 약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이라고 끝나는데 연출부가 그 뒤의 대사는 알아서 준비해오라고 해서 거의 A4 1장 반 정도를 더 써서 갔다. 그리고 현장에서 촬영하기 직전, 내 앞 시장 바닥에 거의 50여명의 보조 출연자들이 있으니 진짜 약장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영화에 내 얼굴이 엄청나게 크게 나오겠지, 하는 생각에 들떠서 신나게 리허설을 했다. 그런데 그걸 본 감독님의 첫마디가 “연기하지 마세요”였다. 나로서는 당황해서 속으로 ‘이게 뭐지?’ 하면서 얼어붙어버렸다. 시장의 약장수를 어색하게 꾸며서 하지 말고 진짜처럼 자연스럽게 하라는 주문이었다. 그 뒤로 ‘연기하지 마세요’라는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다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 20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비중으로 따지면 <킬리만자로>(2000)의 나이 든 조폭이 가장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아, 오승욱 감독은 잊을 수 없다. 내가 뭐라고 그때 그렇게 크고 좋은 역할을 줬는지 일생을 두고 고마운 사람이다. <킬리만자로>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많아서인지 지금도 가끔 그 영화 얘기를 해주는 팬들이 많다. 지금 나에게 다시 하라고 하면 정말 잘할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다. 요즘 농담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감독은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나에게 가장 많은 분량을 주는 감독’이라고. (웃음) 옛날에는 오승욱 감독이었다면 지금은 <각설탕>(2006), <챔프>(2011)에 이어 <7번방의 선물>에 나를 캐스팅해준 이환경 감독이다. 마찬가지로 ‘최고의 시나리오’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당연히 ‘내가 계속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끝까지 살아남는 시나리오’다. (웃음) 좀 그런 뻔뻔함이 있어야 배우를 계속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러면서 경제적 이득도 생기면 가족들도 좋고 동네 막걸리 친구들에게도 한턱 쏠 수 있다. 물론 3만원 이내에서. (웃음)

-확실히 과거 인터뷰했을 때보다 훨씬 더 밝고 편안해진 느낌이다.
=쉰살 넘어가면서 자연스레 편안해졌다. 예전에는 현장에 나가 있으면 잘 모르는 남의 집에 가 있는 것 같은 불편함이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편안하게 있더라. 기를 써서 뭘 어떻게 해서 되는 것도 있지만 문득 깨닫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배우를 늦게 시작한 것처럼 그 역시 뒤늦게 깨달은 것 같다.

-<7번방의 선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방장인 오달수가 글을 몰라서 놀림을 당하자 모로 누워 구부정하게 있는 장면이다. 요즘 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정말 웃기긴 하지만 실제 당사자한테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었다. 혹시라도 그가 글을 몰라서 교도소에 온 거라면, 자기를 표현하고 변호해야 할 순간에 그러지 못해 누명을 쓴 거라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그건 내가 달수 캐릭터를 알아서 그런 것도 있다. 그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대학로에서 알고 지냈는데, 한번은 호프집에서 우리 일행이 있으니 와서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하고 얘기를 더 하고 있는데 계속 옆에 서 있기에 더 할 말이 있냐고 물었더니, 내가 가라는 말을 안 해서 대화 도중에 차마 ‘가보겠습니다’라는 말로 끼어들지 못했다는 거다. 이후 그가 엄청난 스타가 된 다음 우연히 대학로의 술집 골목에서 딱 마주쳤는데 정말 예전 모습 그대로 반듯하게 인사를 하더라. 그 정도로 무척 예의 바른 친구다. 아무튼 아까 그 장면에서 김정태가 글 모르는 오달수를 계속 구박하는 장면이 있는데 진짜 웃기다. 애드리브가 거의 80%였던 것 같은데 정말 대단했다. (웃음)

-혹시 산전수전 다 겪은 배우로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배우로 먹고살아야 하나, 20년 전의 나처럼 지금도 많은 젊은 친구들이 똑같은 고민을 안고 살 거다. 나는 늘 후배들에게 ‘배우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자기 몸과 마음을 써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끔 하고 더 나아가 감동까지 주는, 흔치 않은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배우는 소중하고 훌륭한 존재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함부로 자기 몸과 마음을 자학하거나 혹사시키지 말라고 한다. 몸도 마음도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게 배우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잘 난 배우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서 설득력이 떨어지려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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