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의심하는 남자는 항상 ‘그 어떤 놈’의 정체를 알고자 한다. 여자에 대한 배신감은 오히려 잠깐일 뿐, 곧 머릿속은 온통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그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다. <디 아더 맨>은 사라진 아내와 충실한 남편, 그리고 ‘그 어떤 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행복했던 피터(리암 니슨)의 삶은 어느 날 아내 리사(로라 리니)가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 채 홀연히 종적을 감추면서 망가지기 시작한다. 맨 처음 피터는 구두 디자이너였던 아내의 패션업계 동료들을 의심하지만, 리사가 두고 간 컴퓨터에서 ‘LOVE’라는 폴더를 발견하게 되고 피터는 ‘그 어떤 놈’의 실체를 목격하게 된다. 그 폴더에는 리사의 나체사진과 함께, 그녀가 이탈리아 출장 중에 만났던 남자 레이프(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사진이 함께 들어 있었다.
강력한 극적 반전은 놀라움과 그럴듯함을 겸비할 때에만 빛을 발한다. 즉, 행간에 숨은 연결고리를 드러내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 전체를 새롭게 재구성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디 아더 맨>의 패착은, 내장된 반전의 장치가 꽤 훌륭한 전반부와 봐줄 만한 후반부를 잇는 개연성을 아예 망가뜨려버린다는 데에 있다. 엉뚱한 반전이라는 ‘비틀린 경첩’ 덕분에 관객은 긴장감있는 스릴러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따뜻한 가족드라마로 문을 열고 나온다. 이런 불균형은 감독이 관객과 게임을 하는 내내 부당하게 룰을 어기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추격의 아이콘’ 리암 니슨과 훌륭하게 캐릭터를 소화해낸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호연도 이미 무너진 연출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흥미로운 소재와 제법 인상적인 몇몇 장면들 때문에 그 실패가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