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엇나간 감정의 갈퀴 <여친남친>
2013-02-06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대만과 한국의 현대사는 겹치는 부분이 꽤 많다. 오랜 기간 일제 강점기를 거친 뒤에 분단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민주화의 과정 이후 극단적 성공의 시기를 달렸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역사가 주축이 되는 대만영화들은 굳이 시대사를 몰라도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측면이 있다. 영화 <여친남친>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세명의 고등학생 메이바오(계륜미), 리암(장효전), 아론(봉소악)은 언뜻 보기에는 엇나간 삼각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명확히 감지되진 않지만 엇나간 감정의 갈퀴들이 그들을 감싸고 돈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확실하지 않은 마음 때문에 누군가는 상처받고 또 혼자서 상처를 삭인다. 훗날 그 아픔은 다른 상처를 끌어낼지 모르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영화 <여친남친>은 시대와 순행하며 인물의 성장기를 따라간다.

이러한 인물과 시대간의 관계를 다소 도식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아론 역의 봉소악은 혼혈 배우인데, 그런 그가 영화에서 ‘대만 신분증을 지닌 외국인’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 등은 어쩌면 의도가 다분히 투영된 결과이다. 80년대 시작된 미국과 대만간의 국제정세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훗날 자본가의 딸과 혼인하는 그의 미래도 이와 연관된 듯하다. 메이바오가 아무리 리암의 사랑을 받으려 해도 태생적으로 그가 가진, ‘선천적으로 봉쇄된 사랑의 불가능성’은 중국 본토와 대만간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니 훗날 태어나는 쌍둥이 소녀들 역시 마찬가지로 꽤나 의도적인 결과물일 수 있다. 영화의 사이사이 카메라가 자주 메이바오를 정치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따라서 시대와 인물을 잇는 연출적 장치로 보면 된다. ‘자유’나 ‘민주’란 제목이 달린 금서를 판매하고, 술을 감추어 집회에 참여하는 식으로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영화 <여친남친>의 가장 큰 장점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젊음의 정서가 던지는 사랑의 분위기로 가볍게 푼다는 데 있다. 군더더기 없이 충실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시나리오의 방향성 역시 훌륭하다. 역사가 주는 아픔, 사회적 금기에 대한 적대감을 양야체 감독은 청춘의 로맨스에 자연스레 녹여냈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도 잘 맞는 편인데, 특히 계륜미의 팬이라면 <여친남친>은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 될 것이다. 10년 내공의 자신감 붙은 연기가 자칫 식상해질 수 있는 메이바오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지난해 금마장 시상식에서 그녀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이를 칭찬받았다. 가슴을 울리는 큰 감동은 없지만 눈과 머리가 상쾌해지는, 현대 주류 대만영화의 대표 격으로 손색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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