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저 땅에 사는 저 사람들의 삶 <비스트>
2013-02-06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아저씨, 욕조섬을 떠나실 거예요?” 또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6살 소녀 허쉬파피(쿠벤자네 왈리스)가 묻는다. 아저씨도, 아버지도 대답은 똑같다. “아무도 안 떠날 거야.” <비스트>는 루이지애나 남부 어느 어귀에 있을 법한 수몰 직전의 마을에서 끝까지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우는 저 강인한 사람들을 뒤쫓는다. 그들은 피난 대신 축제를, 울음 대신 발악을, 낙담 대신 낙천을 택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얄팍한 지붕 한장으로 천둥, 번개를 가릴 수 있다 믿어도, 물에 잠긴 욕조섬을 구하기 위해 도시 사람들이 쌓아놓은 제방을 폭파시켜도, 매번 다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보호소를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가도, 온전히 그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존중 정도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는 삶에 대한 그들의 무모한 열정을 무조건 긍정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 ‘위’가 아닌 ‘옆’에 관객을 앉힌 것이, 몇년 전부터 아예 뉴올리언스에 살며 영화를 만들고 있는 벤 제틀린 감독과 그가 속한 독립영화제작집단 ‘코트 13’의 성과일 것이다.

<비스트>를 보며 누군가는 테렌스 맬릭과 짐 자무시의 영향을 떠올리기도 하고, 감독은 에미르 쿠스투리차와 레스 블랭크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한다. 16mm 필름과 핸드헬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점이나 현실과 환상을 부드럽게 교차시킨 점 등이 권위가 실린 위의 각주에 미약하나마 근거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 영화만의 특별함은 어디까지나 저 땅에 사는 저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담아냈다는 데에 있다. 그에 비하면 영화적 에너지 자체는 그리 폭발적이지 못한 편이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최근 몇년 사이에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비스트>만큼 화제를 모은 작품이 없다. 그 여세를 몰아 오스카 4개 부문에 이 영화를 올려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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