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시한폭탄 로맨틱코미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2013-02-06
글 : 장영엽 (편집장)

실버라이닝. 구름의 빛나는 부분을 뜻하는 말이다. 아무리 안 좋은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언젠가 좋은 날이 오리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고 싶을 때 미국인들은 이 단어를 쓴다. 구름의 빛나는 한 줄기 빛을 제목에 품고 있는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그걸 풀어내는 <파이터>의 감독 데이비드 O. 러셀의 방식은, 으레 하는 위로처럼 결코 진부하지 않다.

팻(브래들리 쿠퍼)의 인생에는 먹구름이 잔뜩 꼈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막 퇴원한 참이다.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충격에 조울증을 앓게 됐기 때문이다. 팻은 아내와의 재결합을 꿈꾸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부부의 집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그는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를 만난다. 남편을 잃고 성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그녀는 소원해진 아내와의 사이를 이어주겠다며 팻에게 접근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로맨틱코미디다. 수많은 로맨틱 장르의 커플들이 머리로 재는 ‘밀당’으로 관객의 조바심을 유도하는 반면, 이 영화의 두 남녀에게 ‘이성’이라는 여과 장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상대방의 약점까지 서슴없이 건드리는 그들의 속사포 같은 막말이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 봇물처럼 터져 흐른다. 이러한 말의 향연을 지켜보는 것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중요한 묘미다. 전작 <파이터>에서 밝은 이미지의 에이미 애덤스를 삶에 찌든 강인한 여인으로 변하게 했듯, 데이비드 O. 러셀의 배우 보는 안목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코미디/로맨틱 앙상블영화의 훤칠한 조연 이미지였던 브래들리 쿠퍼와 <윈터스 본> <헝거게임> 시리즈의 강인한 여전사 같았던 제니퍼 로렌스의 이미지 변신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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