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미국에서 벌어지는 영화 시상식이 우리에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오스카 시상식은 그 자체로 늘 화려한 볼거리이면서도 한편으론 운동경기 같은 면모가 있다. 그래서 종종 수상 결과를 놓고 베팅 본능을 끌어낸다. 올해는 <씨네21>의 선택과 그러나 예측되는 오스카의 선택, 두 가지로 나눠서 놀아보기로 했다. 우리의 선택에는 신중한 근거가 있지만 오스카의 선택에 관해서는 예측일 뿐이다. 재미있자고 해보는 것이니 맞았다, 틀렸다 따지지 마시고 즐겨주시길.
작품상
후보
<아무르> <아르고> <비스트> <장고: 분노의 추적자> <레미제라블> <라이프 오브 파이> <링컨>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제로 다크 서티>
<씨네21>의 선택
<라이프 오브 파이>가 받아야 한다. 만약 <더 마스터>가 후보작이었다면 심각하게 고민했을 테지만 지금은 <라이프 오브 파이>가 최선이다. 우리의 지지 근거는 분명하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야기, 이미지, 기술력 등 모든 점에서 높은 질을 갖춘 정교하고 감동적인 영화다. 전 과목에서 고르게 우수한 학생의 성적표 같다. 인도 소년과 호랑이와 큰 수영장 하나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으니 작품상을 가져갈 자격이 된다. 사실상 리안의 영화는 이 상을 벌써 탔어야 옳았지만 제때 놓치고 몇 박자 늦게 주는 것으로 유명한 오스카의 전통(?)대로 아직 못 받고 있었을 뿐이다. 2006년 폴 해기스의 <크래쉬>가 작품상을 가져간 그해, 사실 그 상의 주인은 리안의 <브로크백 마운틴>이어야 했다고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오스카의 선택
<링컨>이 받을 것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통령을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이 연출한 이 유려한 대작은 강력한 호소력을 지녔다. 누구라도 이 영화를 올해의 가장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 주목할 수밖에 없다. 만약 <링컨>이 아니라면 그때는 <라이프 오브 파이>가 받을 것이다. 전통의 미국식 로맨틱코미디를 품위있고 재치있게 변주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3위쯤 될 것이다. <아무르>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칸에서 이미 영광을 누린 이 작품에 작품상을 나눠줄 것 같지도 않거니와 어울리지 않는 다른 후보작들 사이에 끼어 있는 모양새가 꼭 볼링 선수 사이에 끼어 있는 야구 선수 같다. 한편, 이 부문에 <더 마스터> <문라이즈 킹덤> <007 스카이폴>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제외된 것에 분개하는 목소리가 높다.
감독상
후보
<아무르>의 미하엘 하네케,
<비스트>의 벤 제틀린,
<라이프 오브 파이>의 리안,
<링컨>의 스티븐 스필버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데이비드 러셀
<씨네21>의 선택
리안이 받아야 한다. 우리는 작품상을 <라이프 오브 파이>가 받아야 한다며, 이 작품은 전 과목에서 고르게 우수한 학생의 성적표 같다고 비유했다. 학생이 성적이 좋으면 상은 그 학생이 받아야 한다. 물론 이 비유는 좀 지나치다. 영화는, 특히 할리우드영화는 감독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어서 감독의 연출력이 떨어진다 해도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역시 감독 리안의 연출력이 가장 돋보인다. 말 그대로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작자로서의 창의성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 연출력이 바로 각종 엉터리 3D영화의 양산에 진력이 나버려 등을 돌린 관객조차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되돌아서게 만든 것이다. 한 가지 더. 볼링 선수 사이에 낀 야구 선수 미하엘 하네케는 그냥 제외했다.
(아마도) 오스카의 선택
스티븐 스필버그가 받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통계를 보자. 지난 10년간 그러니까 2002년 74회부터 2012년 84회까지 작품상과 감독상의 주인이 갈린 건 딱 두번이다. 2003년 작품상 <시카고>, 감독상 <피아니스트>의 로만 폴란스키, 2006년 작품상 <크래쉬>, 감독상 <브로크백 마운틴>의 리안. 가만히 보면 작품상은 대중적으로 호소력이 있는 작품에 주고 감독상은 감독의 지명도와 연출력에 근거해 준 셈이다. 하지만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동안은 한 차례도 빠짐없이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의 감독이 감독상도 함께 가져갔다. 그러니까 감독상은 누가 가져갈 것인가. 작품상을 <링컨>이 받게 될 것을 전제하면 감독상의 주인은 스필버그가 될 테지만, 사실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작품상을 탄 감독이 감독상도 같이 가져갈 것이다.
남우주연상
후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브래들리 쿠퍼,
<링컨>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
<레미제라블>의 휴 잭맨,
<더 마스터>의 와킨 피닉스,
<플라이트>의 덴젤 워싱턴
<씨네21>의 선택
덴젤 워싱턴이 받아야 한다. 워싱턴은 <플라이트>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했고 그의 연기 인생 중 최고에 속할 만하다. 물론 그는 2001년 <트레이닝 데이>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가 주로 맡는 정의와 도덕의 인간형과는 완전히 상반된, 부패하고 잔인한 마약 전담반 형사 역할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연기보다 캐릭터의 힘이 더 컸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플라이트>에서도 코카인과 술에 절어 사는 비행기 조종사로 나오니 캐릭터의 덕을 본 편이지만, 그의 연기 호흡과 감정 표현이 그 어느 작품과 비교해도 더 특별하다는 게 중요하다. 미국 영화전문지 <필름 코멘트>는 워싱턴에 관한 특집기사를 실었는데, 그의 연기에 관하여 “한 남자의 비통한 광경을 엄청난 섬세함으로 전한다”고 쓰고 있다. 동의한다.
(아마도) 오스카의 선택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받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예컨대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의 영화 필자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오스카 예측 놀이를 하였는데 만장일치로 그의 수상을 점치고 있다. 사실 이 부문에서 다른 이름은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뛰어난 배우 와킨 피닉스 정도가 있지만 인지도 면에서 상대적으로 약하고 그가 오스카를 겨냥한 듯 “시상식, 그런 거 다 헛소리다”라고 말한 것도 괘씸죄가 적용될 공산이 크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출중하다는 점이다. 그가 상을 못 받을 변수는 딱 한 가지다. 이미 두 차례나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에게 남우주연상 3회 수상자라는, 전례없는 기록을 얹어주어 이 상의 희소가치가 흐려질까 염려한 오스카가 시상을 꺼리는 경우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올해 오스카의 가장 큰 이변으로 남을 것이다
여우주연상
후보
<제로 다크 서티>의 제시카 채스테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제니퍼 로렌스,
<아무르>의 에마뉘엘 리바,
<비스트>의 퀴벤자네 월리스,
<더 임파서블>의 나오미 왓츠
<씨네21>의 선택
제니퍼 로렌스가 받아야 한다, 라고는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올해의 가장 긴장감없는 부문이 여기다. 제니퍼 로렌스 아니면 제시카 채스테인이 받을 게 빤한데, 두 여배우의 연기가 실로 놀라웠는가 하면 또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비교할 바가 아니기는 해도 지난해 수상자는 메릴 스트립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래도 둘 중 하나를 꼽자면 제니퍼 로렌스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배우가 아니라 확실히 연기파 여배우다. 이미 <윈터스 본>에서 혼자서 영화의 거의 모든 스릴을 짊어지면서 그걸 입증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는 공격 성향의 정신병 환자를 한방에 제압하는 성격파인 동시에 우울함과 순진함을 동시에 지닌 여인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녀가 화내고 울고 껴안는 그때 이 영화에도 활기가 생긴다.
(아마도) 오스카의 선택
제시카 채스테인이 받을 것이다, 라고는 생각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제니퍼 로렌스가 받을 수도 있다. 다만 두 여배우가 맡은 영화 속 비중에서 제시카 채스테인이 월등히 앞선다. <제로 다크 서티>는 ‘카나리아’(오사마 빈 라덴 체포 작전명)는 어떻게 날게 되었는가에 관한 것인데, 2001년부터 근 십년간 빈 라덴의 연락책을 집요하게 추적한 CIA 여직원의 집념이 있었기에 그 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채스테인이 연기하는 CIA 여직원이 영화의 핵 중의 핵이다. 그런 점에서 채스테인의 수상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국 독립영화 전문지인 <인디와이어>가 한 가지 변수를 슬쩍 흘린다. 오스카가 열리는 날이 바로 <아무르>의 여주인공 에마뉘엘 리바의 86번째 생일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그녀를 위한 깜짝쇼가 될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남우조연상
후보
<아르고>의 알란 아킨,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로버트 드 니로,
<더 마스터>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링컨>의 토미 리 존스,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크리스토프 왈츠
<씨네21>의 선택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받아야 한다. 억지를 좀 피우자면 그가 <링컨>의 병사 중 하나로 나왔건 <레미제라블>의 시민 중 하나로 나왔건 그에 상관없이 우리는 그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호프먼은 단지 영화 속 인물이 되는 게 아니라 영화 속에 있는 또 다른 한 세계가 되곤 하기 때문이다. <카포티>에서 카포티를 맡아 열연했던 그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건 그런 이유였다. <더 마스터>에서 그는 와킨 피닉스와 함께 이 영화를 이끄는 두 주연배우 중 한명, 즉 주연급 조연이다. 자신이 세계라고 호령하는 신흥종교의 교주 역할을 호프먼 정도로 잘할 수 있는 배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비릿한 웃음도, 냉혹한 살기도 함께 품은 그 표정으로 그는 마력의 연기를 펼쳐 보인다.
(아마도) 오스카의 선택
토미 리 존스가 받을 것이다. 예컨대 그가 맡은 역할의 공공적이고 역사적인 가치가 그에게 이 상을 안길지도 모른다. 당대에 흑인 부인과 함께 살면서 노예제도 폐지에 앞장섰던 의원 역할이 주는 역사적, 사회적 호소력이란 오스카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후보자들이 전부 놀랄 만한 베테랑인 데다가 이미 오스카상을 적어도 한번씩은 수상했던 배우들이다보니 어느 쪽으로 보아도 우열을 가리기 힘든 구석이 있기는 한데, 그렇다 해도 여기저기서 다수 수상하여 좀 식상한 감이 있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 크리스토프 왈츠를 제외하고, 자기 연기를 좀 답습하는 경향이 있는 로버트 드 니로도 제외하고, 캐릭터 면에서 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알란 아킨을 제외하면 역시 현재는 토미 리 존스가 가장 앞서 있다는 게 중평이다.
여우조연상
후보
<더 마스터>의 에이미 애덤스,
<링컨>의 샐리 필드,
<레미제라블>의 앤 해서웨이,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의 헬렌 헌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재키 위버
<씨네21>의 선택
앤 해서웨이가 받아야 한다. <레미제라블>에서 해서웨이는 판틴이 돈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아름다운 머리칼을 잘라 파는 장면에서 실제로 자기의 긴 머리칼을 자르는 걸 선택했다. 그런 여배우들은 많으니 새삼 감탄할 일은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해서웨이가 연기에 임하는 자세를 한마디로 알 수 있게 하는 일화여서 예로 들었다. 그저 그런 미모의 할리우드 스타로 남을 것 같았던 해서웨이가 <레이첼 결혼하다>에서 불현듯 보여주었던 파괴적인 힘을 우린 기억하는데, <레미제라블>에서는 다시 한번 그 힘을 뿜어내며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이 경우에는 그녀의 출연 분량이 적은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온 많은 사람들이 <레미제라블>의 최고 장면을 말할 때 판틴의 독창장면을 빼놓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스카의 선택
앤 해서웨이가 받을 것이다. 남우주연상 부문에서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여우조연상 부문에서는 해서웨이가 그렇다. <가디언>의 필자들도 입을 모아 그녀의 수상을 예측하는데, 그중에서도 그녀가 탈 것(will)이라는 예상과 타야 한다(should)는 주장을 동시에 하고 있는 필자 한명은 “<레미제라블>에서 그녀의 퍼포먼스는 실로 놀랄 만큼 아름답다”고 예찬했다. 재키 위버는 왜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헬렌 헌트와 샐리 필드는 좀 약하고 에이미 애덤스가 적수가 될 수는 있겠는데, 현재 분위기는 해서웨이가 훨씬 우세하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온 사람들이 조연배우의 연기를 보고 그게 이 영화의 최고 장면이라고 꼽는 경우는 이들 중 오로지 해서웨이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