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
[클로즈 업] 영화의 원초적 힘을 되찾고 싶다
2013-02-19
글 : 이기준
사진 : 최성열
13년 만에 새 장편으로 돌아온 <홀리 모터스> 레오스 카락스 감독

“너의 벌은 네가 되는 거야. 평생 너 자신으로 사는 것.” 13년 만에 새 장편으로 돌아온 영화감독 레오스 카락스는 주인공 오스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 우울한 선고문이 시사하듯이, 영화 <홀리 모터스>는 새로운 것에 대해 눈 감고 귀 막은 ‘죽은 관객’과 망가진 자동차처럼 평생 자기 자신이라는 하나의 배역에 정차하여 사는 현대인을 향해 감독이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2월4일 아침, 프랑스 문화원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영화 홍보차 내한한 레오스 카락스 감독을 만나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홀리 모터스>는 <폴라 X> 이후 13년 만에 선보인 장편영화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그동안 착수했던 여러 작품들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부딪히는 장애물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면 곧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찍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디지털로 찍더라도 끝까지 밀어붙여서 장편영화 한편을 완성해보자 마음을 먹었다. 이전에 미완으로 남았던 프로젝트의 경험들을 모아서 <홀리 모터스>를 완성했다.

-이 영화는 어떤 발상에서 시작되었나.
=처음에는 세개의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첫 번째는 영화의 첫 장면, 즉 영화관에 죽은 듯이 앉아 있는 관객의 모습이다. 두 번째는 아주 기다란 리무진의 외관이다. 생각해보면 리무진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물건이다. 최첨단 시스템이 집약되어 있지만 결국 본질은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일 뿐이고, 또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과시욕의 상징이자 내부를 볼 수 없게끔 만들어진 밀실이기도 하다. 더욱 재밌는 점은, 우리가 리무진을 대여하지, 실제로 소유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리무진을 대여함으로써 이를 자신의 아바타로 삼고, 자신이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 되는 것마냥 아바타 놀이를 즐긴다. 마지막 세 번째 이미지는 그 리무진 안에 앉아 있는 드니 라방의 모습이다. 리무진의 내부는 마치 호화로운 창녀의 호텔방처럼 을씨년스런 슬픔이 있다. 그 안에서 배역을 위해 분장을 하는 드니 라방의 모습을 찍고 싶었다.

-주인공 오스카는 하루 동안 열한 가지의 삶을 살아내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어떻게 구상했나.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오스카의 직업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는 그저 한 삶에서 다른 삶으로 건너뛰는 역할을 수행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배우라고 하기에도 뭣하다. 왜냐하면 그에겐 관중도, 카메라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스카를 배우로 그리기보다는, 그가 어떠한 직업의 사람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그의 정체를 모호하게 연출했다. 영화 전체에서 이런 지점에 신경을 썼다. 미셸 피콜리가 분한 얼굴에 점이 있는 남자도 사실은 내가 그 배역을 하려고 했다가 생각을 바꿨다. 내가 등장하면 관객이 ‘아, 저 사람 영화감독이지!’ 하면서 명확한 정체성으로 인물을 고정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드니 라방과 꼭 작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드니 라방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배우인가.
=내 데뷔작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에서 그와 처음 만났다. 영화를 준비할 때 소년 역할에 적합한 배우를 찾지 못해 꽤 오랫동안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다 구인구직소에 등록된 배우 리스트에서 드니 라방을 발견했다. 참 특이한 얼굴이었지만, 내가 찾는 소년의 이미지에 가장 가까웠다. 드니는 점점 좋은 배우가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정말 못하는 배역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는 딸을 집에 데려다주는 가장과 죽어가는 노인의 역할이 가장 어려웠는데 이를 놀랍게 해냈다. 처음에는 사실 이를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홀리 모터스>에는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이 담겨 있다. 이 영화 전체가 결국 그에 대한 답인 셈인가.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던지는 질문에 대해 답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영화를 통해 내 모든 궁금증들을 담아내려고 한다. 공포와 의구심 같은 것들, 그걸 표현하고 싶다. 그에 대한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영화 본질의 원초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시원에 존재했었던 그 엄청난 힘. 그걸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성영화 시절 무르나우의 영화를 보면 배우를 바라보는 카메라에서 신의 눈길이 느껴진다. 요즘은 유튜브니 뭐니 해서 쉽게 영상들을 찍고 올린다. 어디에나 영상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 영상들 속에서는 신의 눈길을 느낄 수 없다. 나는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를 복원해내고 싶다.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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