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규모는 키웠으나 내실을 다지진 못했다
2013-03-07
글 : 한주연 (베를린 통신원)
할리우드와 비서구권 아트하우스영화 사이에서 동유럽을 주목한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차일드스 포즈>로 금곰상을 수상한 칼린 피터 네처 감독.

2013 베를린영화제 수상자 리스트

금곰상 / <차일드스 포즈> / 칼린 피터 네처 은곰상(심사위원대상) / <언 에피소드 인 더 라이프 오브 언 아이언 피커> / 다니스 타노비치 은곰상(알프레드 바우어상) / <빅 앤드 플로 소 어 베어> / 드니 코테 은곰상(감독상) / <프린스 아발란체> / 데이비드 고든 그린 은곰상(여우주연상) / <글로리아> / 파울리나 가르시아 은곰상(남우주연상) / <언 에피소드 인 더 라이프 오브 언 아이언 피커> / 나지프 무이치 은곰상(각본상) / <클로즈드 커튼> / 자파르 파나히 은곰상(예술공헌상) / <하모니 레슨스> / 촬영감독 아지즈 잠바키예브 특별언급 / <프라미즈드 랜드> / 구스 반 산트 특별언급 / <라일라 푸리> / 피아 마라이스

“실험실 베를린영화제에 감사드립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받은 <차일드스 포즈>의 제작자 아다 솔로몬의 수상소감이다.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주요상은 예술성과 정치성이 적절히 조합된 미니멀리즘적 다큐멘터리영화들이 휩쓸었다. 금곰상과 은곰상은 동유럽권이 차지했다. 거친 핸드헬드 촬영이 트레이드 마크다. 현지 언론도 예년과 달리 이번 금곰상과 은곰상 선정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차일드스 포즈>에 금곰상을 안긴 것은 좋은 선택”이라며 “화면은 수수하고, 스토리는 긴장감 넘친다”고 호평했다. 주간 <슈피겔>은 “집행위원장 디터 코슬릭의 베를린영화제는 지난 몇년간 새롭게 균형을 맞추는 것에 성공했다. 헛되이 고전적인 유럽 예술영화나 미국영화의 얼마 안되는 진주를 찾기보다는 아시아와 동유럽에서 흥미로운 영화들을 골라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하지만 경쟁부문 라인업을 장식했던 감독들의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작품들에 비해 수작은 드물었다. 경쟁부문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베를린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의도가 눈에 보인다. 영화들은 두 갈래로 나뉜다. 스타 배우나 감독을 동반한 미국과 서유럽의 그저 그런 웰메이드영화와 비서구권 국가의 저예산 아트하우스영화들이다. 다시 말해 세계의 주류와 비주류영화들이 섞여 있는 프로그래밍이다. 할리우드, 월드 스타들을 베를린 레드카펫으로 불러들여 대중의 관심을 끄는 한편, 작품성을 보장하는 예술영화들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니 자연히 출품작들의 수준들이 고르지 못하다. 가령 소더버그 감독의 <사이드이펙트>, 샤이어 라버프가 출연한 <네서서리 데스 오브 찰리 컨트리맨>, 카트린 드뇌브가 출연해 경쟁작에 오른 <온 마이 웨이> 같은 작품들은 대중성이 강하지만 영화제 작품으로는 석연찮다. 경쟁부문의 경쟁외 작품과 스페셜부문에선 <레미제라블> <비포 미드나이트>, 독일에서 곧 개봉할 할리우드영화들이 포진해서 영화제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다. 비판가들이 영화제의 내실에 의문을 던질 만하다.

<차일드스 포즈>
<언 에피소드 인 더 라이프 오브 언 아이언 피커>

금곰상에 <차일드스 포즈>의 칼린 피터 네처 감독

베를린영화제가 루마니아에 안긴 첫 금곰상 <차일드스 포즈>는 병적으로 아들에게 집착하는 주인공 코넬리아에 대한 이야기다. 부패 상류층에 대한 사회연구인 동시에 내밀한 모자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루마니아 상류층인 코넬리아는 헤르타 뮐러의 책을 읽진 않아도 책장에는 꽂아둔다. 올 베를린영화제가 표방한 ‘강한 여성’들 중 가장 비호감 인물일 것이다. 칼린 피터 네처 감독은 긴 대화의 시퀀스를 통해 인간관계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코넬리아의 아들이 낸 차사고로 한 아이가 목숨을 잃는다. 감독은 아들이 교도소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돈, 권력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주인공 코넬리아의 주변 환경과 심리를 자세히 파헤친다.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은 <언 에피소드 인 더 라이프 오브 언 아이언 피커>를 연출한 보스니아 출신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에게 돌아갔다. 이 영화는 어느 집시 가족이 실제로 겪었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한 세미다큐멘터리다. 실화의 주인공들이 배우로 출연했으며 고철장수 나지프는 남우주연상을 받는 영예도 얻었다. 전문배우가 아닌 아마추어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지난해 <전쟁마녀> 이후 영화제 역사상 두 번째다. 타노비치의 극사실주의적인 핸드헬드 촬영은 드라마틱함을 더했다. 나지프의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일상은 아내 세나다의 갑작스런 유산으로 위기에 빠진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지만 의료보험에 들지 않은 탓에 결국 수술을 거부당한다. 차가운 현실 속에 고철더미를 뒤지며 고군분투하는 나지프의 모습이 눈물겹다. 동유럽 로마족의 심각한 빈곤,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수술을 거부하는 동유럽의 인권 현실을 고발하는 이 영화의 사회적인 메시지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클로즈드 커튼>

이란 당국의 처벌을 기다리는 <클로즈드 커튼> 자파르 파나히 감독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정치적 영화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세계 사회/정치 이슈의 창이었다. 겉으로 ‘강한 여성상’을 표방하는 영화들이 양적으로 많았지만 잘 살펴보면 환경, 동물 생명권, 부패, 가톨릭 비판, 동성애 문제, 소수민족, 빈곤문제 등 각종 정치사회적 테마들을 아 우르고 있다. 특히 동물 생명권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은곰상 예술공헌상을 수상한 <하모니 레슨스>는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었다. 어린 소년이 양을 도살해 내장을 꺼내고, 가죽을 벗긴다. 주인공 아슬란이 겪는 트라우마의 시작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에미르 바이가친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모두가 동물을 죽인다는 것을 관객에게 주지시키고 싶었다”고 밝혔다. 절제된 카메라에 담긴 아름다운 풍경과 정적인 화면이 인상적이다. 불안하고 예민한 사춘기 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신경증적 결벽증, 곤충관찰, 학교생활, 교우관계를 통해 잘 드러냈다.

충격적인 영상으로는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한 캐나다 감독 드니 코테의 <빅 앤드 플로 소 어 베어>도 마찬가지다. 전과자 레즈비언들의 사랑과 갈등을 다루는 듯하던 이 영화는 후반부에 예기치 못한 복수극으로 치닫는다. 주인공들이 곰덫에 걸려 죽어가는 끔찍하고 절망적인 순간이 여과없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이 영화에 곰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주요 인물들의 고통스런 시간을 바라보면서 덫에 걸렸을 수많은 곰들의 시간이 겹친다. 한편 이번 영화제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뜨거운 영화였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클로즈드 커튼>에도 동물이 등장한다. 이슬람에서 불결한 동물로 터부시되는 개가 이란에서 무자비하게 살육된다. 영화는 자신의 개를 지키려고 바닷가의 아름다운 전망이 보이는 창을 어두운 천으로 가리는 어느 작가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이란 당국으로부터 20년 영화제작 금지형을 받은 자파르 파나히의 예술혼은 베를린영화제에 모여든 세계 관객을 감동시켰으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이란 당국의 처벌이다.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한 <프린스 아발란체>는 불타버린 숲의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아름다움을 벗삼아 길에 차선을 그리는 두 청년의 이야기다. 그들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이 독특한 코미디영화는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도 화제였다. 환경문제를 직접적으로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인간과 자연이 합일되는 순간을 영화에 효과적으로 담아낸 독립영화 감독 데이비드 고든 그린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때다. 영화제 중반까지 가장 호평받았던 칠레영화 <글로리아>는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외로운 중년 여성 글로리아를 연기한 파울리나 가르시아는 이번 영화제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63번째 금곰 파티가 끝났다. 전반적으로 영화제 경쟁부문의 수준은 지난해의 성공에 미치지 못했다. 현지 언론은 독일영화의 약세를 아쉬운 점으로 꼽기도 한다. 그럼에도 올해의 베를린은 동유럽, 아시아, 남미의 몇몇 수작들을 발굴했다. A급 영화제의 진정한 내실은 미지의 영화들을 발견하는 데 있다는 교훈과 함께 63회 영화제는 막을 내렸다.

<프린스 아발란체>
<빅 앤 플로 소 어 베어>

해원은 잠에서 깬다, 삶이 꿈이다

경쟁작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대한 외신의 말, 말, 말

<쥐트도이체차이퉁>
홍상수는 베를린영화제에 잘 초청되는 감독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처럼 월드 프리미어 상영작이 많지 않은 경우 그의 영화는 가장 큰 기대를 하게 되는 작품에 속한다. (중략)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한국의 일상은 사실적으로 묘사되나, 영화 속 이야기 중 진짜 일어난 확실한 사건은 하나도 없다. 홍상수의 이야기에는 길을 잃을 틈, 균열, 구멍이 있다.

<타게스차이퉁>
이번 영화의 코미디는 홍상수의 전작에 비해 좀 덜하다. 반복의 순간들도 구조적 무게가 덜하다.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와 그로 인한 고통이다. 해원은 현실을 떠나기를 원할 수도 있고, 그냥 거기 머물 수도 있다. 마지막 순간 해원은 잠에서 깬다. 삶이 꿈이다.

<타게스슈피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홍상수의 여느 영화들처럼 영화를 보며 모든 걸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거다.

<베체트>
비극적이며 고요한 영화다. 영화에선 안 좋은 날씨와 사랑에 대한 고민이 계속된다. 그래도 재미있게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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