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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도가니] 전 죽으면 사람들이 뭘 기억할까요?
2013-03-04
글 : 조성규 (스폰지 대표)
박철수 감독을 떠나보내며 나를 돌아보다
고 박철수 감독의 유작 <생생활활>은 3월21일 극장 개봉한다.

‘박철수 감독님 조감독 이00입니다. 감독님께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오늘 새벽 운명하셨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문자로 먼저 전해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나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오랜만에 박철수 감독님이 연락을 주셨다. 별 생각 없이 메시지를 열어보니… 조감독이 감독님 휴대폰으로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린 것이다.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자기 이름으로 오는 부고라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봐도 별다른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볼까? 감독님이 이런 장난을 하실 분은 아닌데, 트위터를 체크해보니 부고가 진짜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허망하고 허탈했다. 난 감독님과 사실 몇번 만난 적이 없다. 오래전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와서 받았더니 한번 보자고 하셨다. 동갑내기인 김태용, 김정중 감독 때문에 이래저래 감독님 얘기를 많이 들어서 별로 낯설지 않았다. 강의 나가는 학교에 큰 시사실이 있는데 그냥 놀리는 게 아깝다며 나더러 극장을 운영해볼 생각이 없냐는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영화보다 레드카펫 패션으로 더 화제가 된 감독님의 작품을 배급하면서 한두번 더 감독님을 뵈었다. 예전 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에 최근 진행 중인 작업이 솔직히 이해가 안됐다. 왜 꼭 그런 영화를 찍으시냐고 건방지게 질문을 했다.

요 며칠 동안 계속 머릿속에 감독님과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가 맴돌았다. 하필이면 부고를 받은 날 홍상수 감독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시사가 있었다. 아침에 베를린에서 돌아온 감독님을 극장에서 만나 부고문자 얘기를 드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냥 홍 감독님에게 그 문자를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전에 볼 때는 전혀 슬프지 않았던 장면인데 영화에 이 감독(이선균)이 해원에게 “내가 죽으면 3가지는 남는다. 하나는 내 새끼고 또 하나는 내가 만든 영화, 그리고 마지막은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라 말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난 어려서부터 죽음에 지나친 공포심이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사람이 죽는 영화를 수입하거나 제작하지 않았다. 노부부의 죽음을 다룬 미하엘 하네케의 <아무르>를 보면서는 중간에 극장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 정도로 심한 ‘죽음포비아’ 환자다. 언젠가는 방송에서 호스피스 병동 의사가 ‘웰다잉’(well-dying)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서 꺼익꺼익 울었다. 결국 우린 다 죽는데 뭐하러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라는 생각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무언가를 고민하고 자신의 처지를 남 탓 하지 않고 본인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다 돌아가신 박철수 감독님을 생각하면 갑자기 창피하고 부끄럽다. 감독님은 처음 영화 <에미>를 PD로 일하던 중에 3개월 휴가를 내서 찍으셨다고 한다. 이른바 투잡으로 찍은 영화로 대종상작품상을 받으셨다.

나는 오랫동안 감독님, 정확하게는 감독님의 조감독이 보낸 마지막 문자를 잊지 못할 거 같다. 언제가 나도 죽으면 그때는 부고를 어떻게 알리게 될까? 나의 친한 지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할까? 아니면 그때는 지금과 다른 시스템이 생겨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부고가 전해질까? 글을 쓰면서 주책맞게 눈물이 난다. 감독님! 전 죽으면 사람들이 뭘 기억할까요?

박철수 감독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후반작업에 매진했던 영화는 <러브 컨셉츄얼리>라는 제목의 영화다. 현재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박철수 감독의 작품도 있다. 유작 <생생활활>이 3월21일 극장 개봉한다. 이장호, 이두용, 박철수, 정지영 감독 등 노장감독 4인방의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영화 <마스터클래스의 산책>도 있다. 그중 박철수 감독이 연출한 <미몽>은 성형 열풍에 사로잡힌 대한민국을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유명 여배우, 한창 성장하고 있는 중학생, 한류 스타를 닮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 스님 등.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펼쳐낸 작품이다. 영화는 제2회 CGV 무비꼴라쥬 독립영화 캠페인 기간인 3월21일 개봉한다.

*893호에 게재됐어야 할 글인데, 지면 사정상 그러지 못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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