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영국의 전래민화 ‘잭과 콩나무’와 그와는 또 다른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이야기를 합쳐놓은 변형이지만, 무엇보다 <반지의 제왕>의 아동용 롤러코스터 버전이다. 핵심 모티브로 작동하는 구전민담 속의 ‘절대 왕관’은 바로 ‘절대 반지’의 또 다른 이름이며, 거인족은 누가 봐도 보다 덩치가 큰 오크족들이다. 게다가 그 거인들의 존재로 인간들은 본의 아니게 상대적으로 작고 귀여운 호빗이 된다. 그들은 인간세계와 거인세계를 오가며 끝없는 추격전을 벌인다. 그러다 보니 콩나무의 성장속도는 그야말로 LTE급이다. 콩나무의 줄기가 바로 액션을 위한 와이어로 기능한다. 물론 가장 핵심적인 것은 CG로 만들어낸 거인족들의 비주얼이다. <아바타>에 사용된 실시간 증강현실 시스템인 ‘시뮬캠’을 도입해 날렵한 신장 8m가량의 거인들을 만들어냈다. 종아리만 드러나는 첫 등장부터 거인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삼촌과 함께 살고 있는 잭(니콜라스 홀트)은 시장에 말을 팔러 갔다가 위험한 처지에 놓인 한 수도사에게서 콩 몇알을 얻는다. 그는 그 콩에 절대 물을 묻히면 안된다고 경고한다. 그날 밤, 잭의 집으로 세찬 비바람을 피해 낯선 손님 이자벨(엘리너 톰린슨)이 찾아오는데, 그녀의 정체는 바로 답답한 성을 벗어나길 원했던 공주다. 그런데 우연히 바닥에 떨어졌던 콩이 빗물에 젖어 하늘로 뻗어오르기 시작하고, 잭과 이자벨은 그 마법의 콩나무에 휩쓸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거인들의 세상 ‘간투아’로 가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인간세계와 무시무시한 거인세계가 연결되고, 오래전 추방당했던 거인들은 그들이 잃었던 땅을 되찾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오려 한다. 그렇게 인간과 거인들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시작된다.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2000), <엑스맨2>(2003), <수퍼맨 리턴즈>(2006) 등을 연출하며 이미 블록버스터의 세계에서 그만의 테크닉을 연마한 바 있다. 물론 시제가 다르긴 하지만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인간세계와 거인세계를 나눠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반지의 제왕> 이후 10년, 그리고 그에 도전했던 무수한 성공과 실패의 사례 위에서 그는 영리한 추적극을 벌인다. 거인들이 인간의 눈앞에 등장하기까지, 그리고 다시 그들이 지상으로 내려오기까지의 긴장감, ‘다윗과 골리앗’처럼 힘을 비교할 수 없는 양쪽의 속도 대결, 그리고 성 하나를 두고 대치하며 싸움을 벌이는 그들의 모습 등 마치 이전 영화들에서 본 듯한 장면들의 연속일 테지만 특별히 모난 부분 없이 화려하게 흘러간다. ‘잭과 콩나무’가 원래 아이들의 이야기였다는 듯 큰 야심없이 ‘킬링 타임’에 충실하다.
묘하게 함께 떠오르는 영화는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 <007 스카이폴>(2012)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들과 스탭들이 합류하며 영국의 문화적 자긍심을 공공연히 드러냈던 <007 스카이폴>처럼, 두개의 영국 민화에서 출발한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역시 (감독은 미국 뉴욕 출신이지만) 배우들의 면면이 영국 일색이다. 향후 할리우드에서의 활동이 기대되는 니콜라스 홀트와 언제나 변함없는 이완 맥그리거는 물론 믿음직한 장군으로 등장하는 <디어 한나>(2011)와 <워호스>(2011)의 에디 마산, 여전히 <트레인스포팅>(1996)으로 기억되는 이완 브렘너, 로열 연극아카데미 출신으로 <HBO> 드라마 <데드우드>(2005)로 유명한 이안 맥셰인, 그리고 거인들의 대장 ‘폴론’ 장군으로 등장하는 <러브 액츄얼리>(2003)의 ‘괴짜’ 빌 나이까지 거인과 맞서 싸우는 ‘영국 연방’의 느낌이다. 실제로 헨리 8세가 살던 햄턴 사유지의 무성한 땅에서 촬영이 시작돼 이곳에 콩나무를 심었다. <반지의 제왕>이 뉴질랜드라면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영국이다. 런던에 있는 ‘영국 탑’의 박물관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에 관한 마지막 유머이자 확고한 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