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터치 오브 라이트>
2013-03-13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소리, 냄새,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유시앙(황유시앙)과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그러하다. 계단 수를 외우고 문과 문 사이가 몇 걸음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시각이라는 중요한 감각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들을 확장시켰기에 유시앙이 세상을 감지하는 폭과 깊이는 좁거나 얕지 않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유시앙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타고 유명세를 얻은 유시앙이 음악대학에 입학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아들과 동행한 엄마는 유시앙에게 기숙사의 실내 구조부터 강의실로 가는 길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일러준다.

또 다른 주인공 치에(상드린 피나)는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음료수 가게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치에는 춤을 추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대학에 들어가자 다른 여자에게 한눈파는 남자친구 때문에 우울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시앙과 치에의 사연은 각기 따로 진행되다가 중반 즈음 하나로 모아진다. 우연한 계기에 가까워진 둘은 고민을 털어놓고 음악과 춤을 통해 소통하고 서로의 상처를 위로한다. 치에는 춤이 무엇인지 유시앙에게 가르쳐주고, 유시앙은 소리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는 법을 치에에게 알려준다. <터치 오브 라이트>는 초여름 들판을 연상시키는 대만영화 특유의 감각을 전달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 황유시앙이 직접 출연하고 연주도 한다.

이 영화는 대학 신입생의 풋풋한 모습이나 춤과 음악을 향한 젊은이들의 열정을 정직하게 그리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기본적인 전개방식은 상업영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주인공 유시앙처럼 영화의 색깔은 맑다. 유시앙은 보이지 않는 치에의 얼굴에 드리운 우울을 읽어내는 예민함을 갖고 있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더 많은 것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지닌 유시앙이라도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콩쿠르에서 우승한 유시앙을 향해 “네가 장님이라 봐준 거야”라고 쏘아붙인 친구의 한마디는 그의 가슴에 못처럼 박혀 있다.

<터치 오브 라이트>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배리어프리 상영이란 시각장애인에게는 화면을 설명하고 청각장애인에게는 소리를 읽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배우 임수정과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이 재능기부를 했다. 제작자 왕가위와 현대무용가 허방의도 이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치에의 춤 스승이자 정신적 멘토로 출연한 허방의의 절묘한 춤사위는 영화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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