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지척인 LA에 살지만 보통은 왜 이 도시가 ‘영화의 도시’라고 불리는지 체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연히 길에서 말을 건 남자가 “오늘 내가 일하는 방송사에서 레드카펫 행사를 하는데 혹시 오고 싶니?”라고 물어올 때면, 그제야 LA의 커피전문점에서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90%는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이라는 도시괴담이 실감난다. 얼마 전 버스에서 만난 스티브는 초면에 다짜고짜 멋진 걸(!) 보여주겠다며 휴대폰으로 ‘에브리바디 라이스’(Everybody Lies)를 검색해보라고 했다. 알고보니 그와 친구들이 직접 만드는 웨비소드였다. 작가도 연출도 출연도 모두 그 안에서 해결하는 원소스 멀티유스의 전형이었는데, 자신은 트렌드에 맞춰 다양성을 존중하고 싶기에 아프리칸 아메리칸, 히스패닉, 아시안 등 다양한 인종을 캐스팅한다는 부연 설명이 친절하게 따라붙었다. 웹시리즈는 TV 혹은 케이블의 2차적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컸기에 요즘 이런 게 대세냐고 물었더니, “당연하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온라인의 웹과 에피소드라는 단어가 만나서 만들어진 웨비소드는 유튜브, 넷플릭스 등 온라인 비디오가 활성화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웨비소드는 기존의 TV시리즈가 웹으로 공개하는 번외편 에피소드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TV나 케이블 같은 이미 정착된 플랫폼이 아닌 온라인을 통해 배급되는 웹시리즈의 에피소드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나 제작하고 누구나 업로드하며 인터넷 접속만 되면 시청이 가능하다는 비교적 평등한 온라인 특성 때문에 메이저 스튜디오는 물론이고 소규모의 개인들이 모여서 만드는 인디 프로젝트들도 끊임없이 올라온다. <버라이어티>가 보도한 3월11일자 기사에 따르면 2011년 웹시리즈로 시작해 케이블TV <쇼타임>으로 플랫폼을 옮긴 <웹 테라피>의 배우이자 제작자인 리사 쿠드로는 또 하나의 웹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글리>의 제인 린치가 출연하는 <드로핑 더 소프>라는 제목의 이 웹시리즈는 온라인 비디오의 확산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TV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TV프로듀서들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제인 린치의 변은 웹시리즈가 아직은 실험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걸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이걸 하는 이유는 옛날에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창작의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웹시리즈가 돈이 안되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웹시리즈는 <웹 테라피>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이제는 크로스플랫폼의 한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같은 날 <LA타임스>는 유튜브에서 출발해 극장으로 영역을 확대한 AwesomenessTV의 사례를 전했다. AwesomenessTV는 유튜브의 방송채널 중 하나로 10대 시청자를 주로 겨냥한 영상물을 프로그래밍해왔다. 시청자 40만명, 조회수 8천만을 자랑하는 이 채널은 오는 3월15일 AMC 극장체인 120개관을 통해 <마인드리스 비헤비어: 올 어라운드 더 월드>를 개봉할 예정이다. 이 영화는 아이돌 그룹 마인드리스 비헤비어의 뒤를 좇는 다큐멘터리로, 그동안 이 채널에서 해당 그룹에 대한 영상 콘텐츠를 주로 방영했을 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활발한 반응을 보내온 이용자가 많은 지역을 조사해 그 주변 AMC 극장에서 한시적으로 영화를 개봉하기로 한 것이다. 영화의 제작 및 배급에 투입된 예산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인디영화 수준의 제작비”이며, 극장 개봉에 이어 DVD 발매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TV는 웹과 모바일로, 웹은 TV 혹은 극장으로 인기있는 콘텐츠의 유통 경로를 넓혀가고 있다. 그 한계점이 어디일지, 아직은 짐작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