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낯선 걸작
2013-03-20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월드 시네마’ 기획전, 3월21일부터 4월25일까지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작은 여우들>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월드 시네마’ 기획전이 열린다. 3월21일부터 4월25일까지 총 13편의 영화가 상영되는데 1930년대부터 2000년까지 동서양의 걸작들이 선보인다. 상영 목록을 보면 공통된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기존 영화제에서 거의 상영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윌리엄 와일러, 존 포드처럼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유명 감독에서부터 인도의 샤트야지트 레이, 일본의 미조구치 겐지,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프랑스의 알랭 레네, 독일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영국의 마이크 파웰 등 세계 거장들의 작품을 모았다.

<벤허>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윌리엄 와일러지만 이번에 상영하는 <작은 여우들>은 낯선 편이다. 이 영화는 20세기 초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형제간의 재산싸움을 그린 실내극이다. 팝음악 가사에도 등장한 눈이 큰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가 악녀로 등장한다. <분홍신>으로 유명한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 감독의 <직업군인 캔디씨 이야기>는 제국주의 시대 영국의 직업군인인 클라이브 캔디의 일생을 되짚는다. 추상적으로 상상하는 애국심 넘치는 직업군인과는 거리가 먼 캔디의 캐릭터와 그가 벌이는 소동들이 인상적이다. 1948년작인 중국영화 <작은 마을의 봄>은 세 남녀의 심리 묘사가 숨 막히는 멜로드라마다. 시골 마을에 사는 부부는 새로 이사 온 이웃 남자로 인해 갈등을 빚게 되는데 그는 남편의 친구이자 아내의 옛 애인이다. 열패감에 휩싸인 남편, 두 남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아내, 어떤 결론을 내려도 이들이 행복해질 수는 없다. ‘영국식’이라는 수사가 꼭 맞아떨어지는 수작 <친절한 마음과 화관>은 블랙코미디에 추리물의 성격이 가미되어 있다.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인데 독특한 살인 동기와 과정, 영화에 녹아 있는 위트에 매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뮤직룸>
<죽도록 사랑하리>

샤트야지트 레이의 <길>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뮤직룸>은 다소 의외의 작품이다. 몰락하는 귀족과 상승하는 부르주아의 교차하는 운명을 그린 이 영화가 전달하는 서글픔과 씁쓸함은 심금을 울린다. 명확한 주제의식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흔들리지 않으며 관객은 추락의 증인이 된다.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조구치 겐지의 <산쇼다유>는 인신매매로 인해 와해된 가족의 비극을 그린다. 1970년 미국에서 만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자브리스키 포인트>는 자본주의와 성도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영화다. 혁명에 대해 논쟁하는 첫 장면은 당대 미국이 안고 있는 고민을 보여주는데 정작 주인공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대학생이다. 문제에 휘말리자 경비행기를 훔쳐 타고 도망가는 곳이 자브리스키 포인트라는 지명의 사막이다. 25살에 이미 <시민 케인>으로 세계적인 감독이 되어버린 오슨 웰스가 만든 1975년 작품 <거짓과 진실>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세잔, 르누아르의 모조화를 그리는 화가와 그의 가짜 전기를 쓰는 작가의 이야기로, 제목처럼 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탐색한다.

알랭 레네의 후기작 <죽도록 사랑하리>는 1950∼60년대 그의 작품이 갖고 있는 특징을 이어받고 있지만 보다 명확한 느낌이다. 사랑,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자살의 윤리를 더불어 언급한다. 화면의 흐름을 고의로 분절시켜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할 시간을 갖게 만든다. 성전환자인 주인공의 애환을 그린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13달인 어느 해에>는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소외당한 하층민의 삶이 그려진다. 모리스 피알라의 <우리는 함께 늙지 않는다>는 지긋지긋한 치정극이 왜 쉽게 끝나지 않는지 보여주며,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은 달콤할 수 없는 인생의 역설을 다룬다. 유일한 2000년대 작품인 <반다의 방>은 리스본 지역의 마약 중독자의 일상을 담은 다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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