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이라면 몰라도, 톨스토이라니. 영국의 로맨틱코미디 명가 워킹타이틀이 러시아의 걸작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것도 의문이었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키라 나이틀리가 안나를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푹 꺼진 눈매에, 남자아이같이 호탕하게 웃던, <오만과 편견>과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깡마른 그 배우가 안나 카레니나를 맡았다고? 다음은 모두의 우려와 달리, 자신만의 안나를 성공적으로 연기해낸 키라 나이틀리의 이야기다.
모험이다. 키라 나이틀리가 안나 카레니나를 연기한다는 건.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의 정부(情婦)다. 수도사 같은 남편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자, 젊고 치기어린 군인 때문에 하나뿐인 아들도 내버리는 매정한 여자다. 영국의 스타 여배우로서 키라 나이틀리가 선점하고 있는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21세기의 엘리자베스 베넷(<오만과 편견>), 스포츠 브래지어를 하고 축구장을 누비는 활기 넘치는 스트라이커(<슈팅 라이크 베컴>), 해적 유령과 맞서 싸우는 귀족 아가씨(<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어느 모로 보나 남성 관객보다는 여성 관객의 사랑을 듬뿍 받을 만한 건강하고 중성적인 모습이 키라 나이틀리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런 그녀를 러시아 사교계 여성들의 공분을 사는 비극적인 연인으로 내세운다고? 무덤에 누워 있던 톨스토이가 벌떡 일어날 일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모험의 재미 아니던가. 조 라이트의 <안나 카레니나>는 키라 나이틀리가 지닌 특유의 개성이 어떻게 다르게 읽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시도다. 나이틀리가 연기하는 안나는 이전에 그녀가 맡은 여느 역할처럼 순수하고 정직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연극 무대 같은 19세기 러시아 사교계에서, 순수는 미성숙의 증거이며 정직함은 교양의 반대말이다. 노련한 사교계 여인이었다면 그럴듯한 말솜씨와 눈속임으로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었을 ‘금지된 사랑’을, 안나는 둘러대고 감추는 법이 없어 그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톨스토이의 원작을 뿌리로 삼고 있는 수많은 동명 영화들이 안나와 브론스키의 비극적인 사랑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조 라이트의 작품은 19세기 러시아의 사교계가 돌아가는 방식과 그들의 규범을 어긴 개인이 몰락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키라 나이틀리가 지닌 아이 같은 활기와 순수함에 변화를 강요하지 않은 채, 그러한 개성이 불합리적으로 취급받는 시대적/공간적 배경 속으로 그녀를 밀어넣은 것이다. 덕분에 그레타 가르보(1935년작)의 안나처럼 성숙한 매혹을 발산하거나 비비안 리(1948년작)의 안나처럼 우아하고 애상적이진 않지만, 키라 나이틀리의 안나 카레니나는 뒤늦게 불같은 사랑에 빠진 철없는 여인의 모습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구현해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신기한 점은, 다른 영화에선 분명 미덕으로 보였을 그녀의 천진난만함이 <안나 카레니나>에선 종종 얄미워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그녀
“함께 영화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건 키라 나이틀리에게도 드문 경험이었다. 그녀는 심지어 원작자 톨스토이마저 안나를 경멸하는 듯 보이는 순간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저 여자 정말 싫다’고 말하면 ‘내가 잘못 연기하고 있나? 모두가 그녀를 좋아하도록 연기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의 요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랑받아야 하는 캐릭터가 있다. 나도 많이 연기해봤다. 예를 들면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안나는 도전적인 캐릭터다. 그녀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행동은 과연 정당한지 의심해보게 되니까.” 키라 나이틀리에 따르면, 안나 카레니나는 “인간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을 반영하는 두려운 거울”이다. “아마 그것이야말로 이 이야기가 수없이 반복된 이유일 것이다. 당신은 그녀를 손에 쥘 수 없다. 당신이 그녀를 미워하고 평가하려 할수록, 캐릭터는 당신에게 똑같은 행동을 할 거다. 나는 안나보다 나은 사람인가? 나는 기만적이지 않나? 우리가 가장 크게 상처주는 사람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는 유죄다. 그리고 그녀만큼 순진하다.” 그런 이유에서 <안나 카레니나>는 그녀의 연기 역사상 가장 어려운 도전이었다고 키라 나이틀리는 말한다. 캐릭터가 덜 사랑받을수록, 관객에겐 더 공감을 사는 역설이 그녀가 감내해야 할 영화의 무게였다.
키라 나이틀리의 악녀 연기 도전이 새삼스러울 법도 하지만, 사실 지난 몇년간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성립된 틀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17살의 나이에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로 스타 자리에 올랐고, 19살에 <오만과 편견>으로 영국 로맨틱 사극의 연인 지위에 올랐으니 너무 이른 나이에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는 게 두려웠을 수 있다. 그녀가 최근 <네버 렛 미 고>의 복제인간 루스나 <데인저러스 메소드>의 정신질환자 사비나 등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맡아온 것도 그러한 우려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를 그녀와 함께한 감독 조 라이트와의 협업이야말로 키라 나이틀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데 적격이었다는 점을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이틀리가 “형제자매 같은 관계”라고 말하는 조 라이트는 누구보다 그녀의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 감독으로 보인다. 연기력은 차치하고라도, 성적인 매력이 부족한(키라 나이틀리의 대척점에 서 있는 여배우로 늘 스칼렛 요한슨이 거론된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여배우를 어떻게 사교계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로 탈바꿈시킬 것인지에 대한 조 라이트의 대답은 의상과 춤이었다. 죽은 새의 깃털을 연상시키는 검은 옷을 몸에 두르고, 길고 우아한 팔을 음악에 맞춰 휘저으며 무도회장을 가로지르는 키라 나이틀리의 모습은 상상할 수 있는 러시아 사교계 여성의 이미지와 꽤 흡사해 보인다. 나이틀리에게도 정극 연기보다 스타일이 중시되는 이러한 방식의 영화는 낯설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였다. 예술적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춤인 적이 없으니까. 내 몸도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중략)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어떻게 동작으로 표현할지 연구하는 건, 지금껏 한번도 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었다.”
vs 내털리 포트먼
<안나 카레니나>를 통한 키라 나이틀리의 이러한 도전과 변화를 지켜보고 있으면 또 하나의 이름이 떠오른다. 동세대 미국 배우 내털리 포트먼이다. 무명 시절의 나이틀리가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아미달라 여왕(내털리 포트먼)으로 위장한 시녀로 출연했을 만큼 두 배우는 흡사한 외모를 지녔다. 닮은 점은 외모뿐만이 아니다. 깡마른 체격에 이지적인 얼굴- 다시 말해 섹시 스타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이미지- 을 가졌다는 점에서 두 배우의 연기 영역 또한 겹쳐지는 지점이 있고, 나이틀리보다 몇발 앞서 커리어를 펼쳐나가고 있는 내털리 포트먼의 사례가 키라 나이틀리에겐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거다. 지나치게 결함없고 똑 부러지는 이미지 탓에 연기 변신에 고전을 겪고 있던 내털리 포트먼을 살린 작품이 바로 <블랙스완>이다. 흑조가 되고 싶은 백조의 이야기, 어쩌면 여배우로서 자신의 실제 염원과도 다르지 않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포트먼은 이 영화를 통해 지적인 배우에서 진짜 배우로 도약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키라 나이틀리에게 <안나 카레니나>는 포트먼의 <블랙스완> 같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늘 <오만과 편견>과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같은 초창기 작품으로 기억되며 건강하고 활기찬 이미지의 배우로 각인되던 키라 나이틀리는, 이제야 자신이 진짜 되길 원했던 배우가 된 듯하다. “신이시여, 저를 용서하세요”라고 외치며 안나가 달리는 기차 밑으로 뛰어드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비극의 여주인공과 마주하게 된다. 기차 바퀴 사이로 보이는 하나의 얼굴은 키라 나이틀리의 것도, 안나의 것도 아니다. 그건 나이틀리의 말대로 인간이 가슴속 심연에 숨겨두고 보지 않으려 하는 공포와 두려움의 얼굴이다. 키라 나이틀리는 자신의 얼굴을 지움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얼굴을 얻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당신은 그 얼굴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